연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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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창 쪽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차창 너머로 보이는 가로수의 일루미네이션이 아름다웠다. 코트 깃을 세우고 팔짱을 끼고 걸어가는 연인들의 모습이 정겨워 보였다.

버스 안 라디오에선 캐롤송이 끝이 나고 “요즘에 어떤 사람이 가장 어리석은 사람인 줄 아십니까?”하는 남자 진행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떤 사람인데요?”하고 여자 진행자가 물었다.

“사랑을 위해 모든 걸 바치는 사람이 가장 어리석다고 합니다.”라고 남자가 대답했다.

그 얘길 듣는 순간, 뭐? 뭐라구?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사랑을 위해서 모든 걸 바치는 사람이 어리석다고?

야아, 세상 변하면 변할 수 있는 것이로구나. 여태껏 살아오면서 사랑을 위해 모든 걸 바친 사람의 얘긴 들어봤지만, 사랑을 위해 모든 걸 바치는 사람이 가장 어리석다는 얘기는 처음이었다.

세상은 바뀌고 이미 나는 구식 중년 아주머니로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씁쓸하기 까지 했다.

우리세대만 해도 사랑에 목숨을 건 내용의 소설이나 영화는 얼마든지 있었다.

소설이나 영화의 주인공들뿐만이 아니라 현실에서도 그런 사람들이 있었다.

그런 주인공들을 보면서 같이 눈물 흘리고 박수를 보내며 그들의 사랑을 응원하던 일들을 나는 기억하고 있다. 모든 걸 버리면서도 얻어 내고 싶을 정도의 사랑이었으니까.

영국의 윈저 공(公)이 왕관을 버리고 한 여자를 택했을 때 영국국민은 배신감을 느꼈다. 영국의 법률은 국왕과 이혼경험자인 여성과의 혼인을 인정하려 들지 않았다.

그러나 국왕은 왕의 모든 지위를 포기한다는 각서를 쓰고 국민들에게 사죄의 말과 함께 이렇게 말했다. “내 옆에 그 여자가 없다면 국왕으로 있는 것도 의미가 없다.”고.

차창 밖의 연인들은 어떨까?

<김가영·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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