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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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을 앞두고 막내아들과 함께 집 안의 유리창들을 닦았다. 창틀에서 조심스레 창문들을 들어내고, 세제를 묻힌 헝겊으로 조심스레 닦아내는데, 새하얗던 헝겊이 금세 새까매졌다.

아침저녁 창문을 여닫으면서도 더럽다는 생각이 든 적은 없었는데, 언제 어디에 눌러 붙어 있었던 것들인지 물에 씻겨 흘러내리는 먼지들을 보면서, 새삼 눈에 보이는 것들이 존재의 전부가 아님을 절감했다.

깨끗이 닦인 유리창으로 내다보는 마당 풍경은 명징하다.

잎을 떨군 나목들은 봄을 잉태하려는 산고로 진저리를 치고 있고, 추위에 파랗게 질린 동백나무에 핏덩이처럼 점점이 박힌 동백꽃엔 일용할 양식을 구하는 동박새의 깃털이 하늬바람 몇 줄기에 파르르 떨린다. 이처럼 유리창에 걸린 겨울 풍경이 오감을 통해 폐부로 들어오니, 박하향 같은 삽상함이 전류처럼 온 몸으로 번진다.

유리창 청소 한 번으로도 세상이 다르게 보인다는 행복한 깨달음이 지나가자, 문득 간과하고 지내왔던 내 ‘마음의 창’이 새삼 궁금해졌다.

과연 나는 제대로 닦인 마음의 창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고 있을까.

지난날들에 대한 반추의 지평이 확장될수록, 점점 얼굴이 달아올랐다. 물론 나름대로 마음의 창을 깨끗이 닦기 위해 현자들의 가르침에 귀를 기울이고, 세상을 섭렵하며 만나는 사람들을 거울삼아, ‘사람의 향기를 지닌 사람’으로 살아보려고 애를 쓰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모처럼 다시 들여다 본 마음의 창에는, 아직도 독선과 아집, 치졸한 선입견에서 유래한 편견과 같은 것들이 먼지가 되어 켜를 이루고 있었다. 무엇보다 부끄럽고 곤혹스러운 것은 지천명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오염된 마음의 창을 방치한 채, 이 풍진 세상이 혼탁하여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고 투정을 일삼던 가당찮은 소아병적 무지몽매였다.

그렇지만 이미 소진되어 버린 시간들을 다시 되돌려 살 수는 없지 않은가. 유행가의 노랫말처럼 남은 시간들만이라도 제대로 살아볼 밖에. 한 시라도 빨리 창에 눌러 붙은 허섭스레기 같은 가치들을 닦아내어, 바른 가치관과 제대로 된 눈으로 ‘사람의 길’ 찾아 걸어가는 수밖에.

빈 건물의 깨진 유리창들을 방치하면 도시의 슬럼화가 가속화된다는 ‘깨진 유리창 이론’이나, 썩은 사과 한 알을 미리 꺼내 버리지 않으면 상자 속의 사과가 모두 썩어버린다는 ‘썩은 사과 이론’은 결코 범죄 심리학에서만 유의미한 경구가 아니다.

무자년 새해를 기점으로 하루하루 마음의 창을 들여다보며, 깨진 창문을 갈아 끼우고 더러운 먼지를 닦아내는 일. 마음속의 사과 상자 속에서 미리 썩은 사과를 골라내는 일이야말로, 일신우일신의 삶을 가꾸어 가는 내 마음 공부의 첫 장을 여는 가르침인 것이다.

<고권일·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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