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현대판 ‘매탄옹(賣炭翁)’
한국의 현대판 ‘매탄옹(賣炭翁)’
  • 제주신보
  • 승인 2018.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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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천천, 제주국제대 중한통번역학과

한국에 오기 전, 필자는 법치(法治) 즉, 엄격하게 법에 의해서 나라를 다스리는 것이 현대 사회의 근본이라고 생각하였다. 한국에 온 후, 법률을 중요시하는 한국인들의 모습을 통해 한국은 이미 법치에 의해 움직이는 사회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최근에 이러한 나의 생각은 조금씩 흔들리고 있다. 약자를 고려하지 않고, 공평하게 사람의 권익을 존중하지 않으면 법률은 서민의 권익을 약탈하는 권력자의 공범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제주지역에서 중앙정부 혹은 지방정부가 추구하는 개발 계획들에 대한 도민들의 반대는 종종 제주 사회의 심각한 이슈가 되기도 했다. 이 가운데 강정민군복합미항은 물론 최근 제2공항건설과 제주시 도남동의 행복 주택 사업, 심지어 도시 도로 확장 사업 등까지 모두 관민(官民) 간의 엄중한 대립을 불러 일으켰다.

필자 역시 한국식 토지 수용으로 인해 철거 이주 통보를 당해서야 비로소 사람들이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이유를 생각해 보게 되었다. 2, 3년 전에 발품을 팔아 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전원주택 한 채를 구입하였다. 제주에 정착하여 가족들과 안정된 생활을 누릴 수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얼마 되지 않아 모 개발단지의 2차 사업용지로 이미 수용 대상에 포함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필자는 ‘벙어리 냉가슴 앓듯’이라는 속담처럼 그저 철거만을 기다리는 신세가 되어 버렸다.

이렇게 불안감에 휩싸인 채 1년 반이 지난다. 작년 말에는 필자와 주변 이웃들이 느닷없이 토지 수용 공문을 받기도 했다. 관계자는 완전히 사무적인 태도로 공식 평정가격에 따라 보상하겠다며 국가 사업이니까 협의하지 않으면 강제수용도 할 수 있다고 답변했다. 부동산 가격이 치솟는 제주도에서 평정가격으로 보상하는 것은 거주자들의 집을 약탈하는 것과 같다.

문득 낯익은 경우가 생각난다. 당나라 시인 백거이(白居易)가 숯을 팔아 생계를 유지하는 노인을 그린 ‘매탄옹(賣炭翁)’에서 숯 파는 노인이 홑옷을 입고 추위에 벌벌 떨면서도 숯 값이 떨어질까 걱정되어 도리어 날씨가 추워지기를 바랐다. 그렇지만 관리들은 한 수레에 가득했던 숯을 전부 황궁에 실어 보내 버렸다. ‘국가 사업’, 즉, 나라를 위해서 하는 일이 아닌가 라며. 국가 이익의 이름으로, 법률에 근거한다는 이유로 국민의 재산권과 생존권을 무시해도 되는 걸까? 제2차 세계대전 때 영국이 공항을 건설하려고 했을 때 주민 한 가구가 단호하게 자신의 토지와 가옥을 떠나지 않으려고 하자 군대 측은 강제로 그 주택을 수용할 생각이었다. 그 당시 영국의 수상인 윈스턴 처칠은 “우리들이 지금 피투성이가 되어 분전하는 목적은 바로 국민의 사유 재산이 침해당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아닙니까?”라며 이를 철회했다.

다수자의 명의로 소수자의 권리를 약탈하는 것을 당연시한다는 것, 이것이야말로 전형적인 갑질의 표현이 아닐까? 인권에 대한 존중, 힘 없는 소수자에 대한 관심을 버리면 법치라 해도 문명사회·진보사회를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