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탐라국 천년이 생각나는 까닭
4월, 탐라국 천년이 생각나는 까닭
  • 제주신보
  • 승인 2018.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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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정옥, 서울과학종합대학원 초빙교수/논설위원

4월이 되면 왜 탐라국 천년의 역사가 생각나는 걸까?

제주도 홈페이지에 소개된 제주역사의 ‘제주도 연혁’은 탐라국으로부터 시작된다. ‘섬 나라’를 뜻하는 탐라국은 2000년 전 상고시대에 형성되어 삼국시대에 이르기까지 존속하였고, 938년(고려태조 21년)에는 태자 고말로가 고려 조정에 들어가 고려왕을 접견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는 탐라국 천년의 역사가 제주도의 연원임을 공표하는 선언이다.

사실, 박찬식 박사의 ‘잃어버린 탐라, 잊어버린 역사’에 의하면 탐라는 지배층의 성립, 해민(海民)들의 교역을 통한 국부창출, 신라를 위협할 정도의 해상 대외진출 등으로 고구려·백제가 멸망할 때에도 건재했던 고대왕국이다. 그러나 고종(1192∼1259) 때에 탐라군이 ‘제주’로 개편된 이후부터는 2006년 제주특별자치도로 개명되어 오늘에 이르기까지 중앙정부에 부속된 ‘관할 섬’으로 통치되고 있다.

제주역사의 2000년을 바라보는 향토사학자들에 의하면 제주도는 탐라국 시대가 역사의 정점이었다. 해상교통의 요충지로서 무역을 통해 중국·일본·동남아 여러 나라들과 독립국가 기능을 적극적으로 수행했던 탐라국 천년. 그 이후의 역사는 끊임없는 외부세력의 침략과 수탈, 학살을 견뎌내면서 공동체를 지켜내려는 저항과 죽음, 통곡의 세월이었다.

기실 이 땅은 망망대해의 절해고도, 바람 속의 한 점 섬에 불과했다. 본토에 외적이 침입하면 마지막 전쟁터가 되어 피비리게 살육하고 학살당하는 땅 끝. 자연 재해와 기근, 전염병이 달려들면 속수무책 스러질 수밖에 없었던 죽음의 땅.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탈출하면 출륙금지령으로 가두어 부역하던 감옥소. 4·3사건 때는 섬사람 열 명 중 하나, 3만이 죽임당한 생지옥. 아, 4·3은 왜 붉은 동백이 뚝뚝 떨어지는 4월, 그 잔인한 달에 발발하였나? 대여섯 명의 친구들이 한꺼번에 ‘아버지 제사떡’을 가져오던 날, 우리들 60여명은 왜 그 침떡에서 어머니의 피눈물을 알아채지 못했던가?

이제는 이 땅의 부활외에는 진정으로 위로될 수 없는 제주도 어머니의 눈물을 가슴에 담는다. ‘조밥 먹으멍 조냥허곡 물질허멍 조냥허곡 설룬 애기 키우젠 이 고생 허멍 살아수게라는 어머니, ‘불벹 더위에 나앉앙 혼나절 지신검질 매당 보믄 4·3소태 때 죽은 아방 생각남니께라는 김종두 시인의 제주여인, ‘해녀라 쓰고 어머니라 읽는 우리들. 그 억세고도 눈물겨운 제주도 어머니의 해민정신으로 제주 역사를 새로 써야 하리라.

이러한 때에, 어느 도지사 예비후보가 제안한 ‘탐라 1000년 역사문화권 정립 사업’은 가슴을 울린다. 제주도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제주인의 심금에 탐라국 천년의 역사를 각인시킬 수 있는 정책으로 가늠된다. 물론 이 사업은 원희룡 도정에서 진행 중인 제주시 원도심의 도시재생활성화 사업과 맥을 같이 한다. 1996년 신구범 민선도정이 추진했던 ‘제주사정립 사업’과도 같은 지향점을 갖는다.

하지만 당시 탐라국을 환기시키는 세계섬문화축제를 추진하던 도지사에게, ‘제주도가 독립운동을 한다며?’라 비아냥거렸던 중앙정부 관료들의 태도는 지금도 여일하다. 1105년(고려숙종10년) 고려가 탐라국호를 폐지하고 탐라군을 설치할 때와 다르지 않다. 문재인 대통령이 발의한 헌법개정안에는 ‘제주특별자치도의 독특한 역사적·지리적·문화적 특수성을 고려해 특별자치정부를 둘 수 있도록 해달라’는 제주도의 건의가 빠져 있다.

차제에 제주도를 탐라국 천년의 자존으로 위상지어 줄 ‘왕 같은 지도자’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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