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로(嫌老)’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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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길주, 수필가

인생 난제들을 해결할 마땅한 방법은 없는가? 앞서간 이들의 삶도 탐색해보고, 처세의 정보나 서책들도 섭렵하고 있겠지만 사방엔 고통의 삶들이다.

젊은 시절의 삶은 밤낮 없이 치열하지만 미래를 위한 투자로 여기며 참고 견딘다. 그 기대한 미래가 다가와도 삶은 여유보다는 피할 수 없는 의무 사항들로 채워진다. 삶의 의미를 되새기며 유유자적 살아간다는 건 꿈같은 얘기다.

그래서 인생을 앞서간 이들도 젊은 시절보다는 노후의 삶을 예찬했는지도 모른다. 노년이야말로 삶의 여유를 향유할 수 있는 인생의 마지막 기회라고.

이제는 그 노년 예찬도 실없는 지난 넋두리로 묻혀간다. 노인은 경로의 대상이 아니라 혐오의 대상이 되고 있으니. 노인을 대하는 사회 시선이 싸늘하다. 급증하는 노인 인구는 많은 복지비용을 필요로 하고, 그걸 부담해야 할 대상은 우리 사회의 주류 세력인 젊은 층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정년을 늦추기도 어려운 시대 상황이다. 대학 졸업이 곧 실업인 시대이니 일자리를 놓고 세대 간 전쟁이라도 벌여야 할 판이다.

그렇다고 고령화가 우리 사회만의 문제는 아니다. 초고령사회에 먼저 진입한 일본은 3~4년 전부터 노년 혐오를 의미하는 ‘혐로(嫌老)’라는 신조어가 쓰인다고 한다. 노인 부양의 부담을 떠안은 젊은이들의 거부감 때문이다. 우리나라도 향후 10년 이내에 인구 20%가 고령자인 초고령사회로 접어들 전망이다. 일본보다 더 빠른 속도로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다. 덩달아 노년 혐오 의식도 급속히 퍼지고 있다는 우려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올해 처음으로 노인 인권에 대한 국민 의식을 조사했다. 그 분석 결과를 보면 노년층보다 청년층이 노인의 처지를 더 비관적으로 보는 것으로 나타났다. 청년층 조사자의 80.9%가 ‘우리 사회가 노인에 대해 부정적인 편견이 있으며 그 때문에 노인 인권이 침해받고 있다’고 응답했다. 놀라운 의식 변화가 아닐 수 없다. 효도나 경로가 중요한 삶의 덕목이었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노인 복지 확대로 청년층의 부담이 늘어난다고는 하지만 자식에게 올인한 이 시대의 노인들에겐 쉬 받아들일 수 없는 충격적인 변화다. 그런데도 정치권은 합리적인 근본 처방보다는 표의 유·불리나 따지며 선심성 정책이나 남발하고 있다. 해결의 실마리는커녕 서로 헐뜯으며 사회 갈등만 키워간다.

김태유는 그의 저서 ‘은퇴가 없는 나라(2013)’에서, 고령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복지재원 마련보다는 경제 활력을 되살리고, 연령별 분업과 인생 이모작 사회를 건설해야 한다고 했다. 건강한 노인은 은퇴하지 않고 새로운 일을 시작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젊은 세대에 의지하거나 무시당하지 않고 당당하게 살아갈 방도를 노인 스스로 찾을 수 있도록 제도적인 뒷받침이 선행돼야 한다. 노인의 삶의 지혜와 기능적 노하우만 따진다면 젊은이보다 비교 우위에 설 수 있는 일자리는 많을 것이다. 인건비도 줄이고, 젊은 세대의 부담도 덜 수 있는 노인 일자리 창출이 고령화 문제의 해법이다. 그것은 국민 모두의 복지로 귀결될 수 있다. 그 실현은 국가와 지방 정부의 엄중한 책무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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