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비검속 희생자 유해 발굴 공항서 재개
예비검속 희생자 유해 발굴 공항서 재개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페이스북
  • 제주의뉴스
  • 제주여행
  • 네이버포스트
  • 카카오채널

지표투과레이더까지 동원...300여 명의 시신 찾기 '시동'
25일 제주공항 남북활주로 끝지점 속칭 ‘묏동산’ 인근에서 지표투과레이더(GPR)를 동원, 유해발굴에 나섰다.
25일 제주공항 남북활주로 끝지점 속칭 ‘묏동산’ 인근에서 지표투과레이더(GPR)를 동원, 유해발굴에 나섰다.

58년 전 예비검속으로 끌려간 300여 명은 어디에 암매장됐을까?

한국전쟁 발발 후 집단 처형된 희생자 유해발굴 사업이 25일 제주국제공항에서 9년 만에 재개됐다. 제주4·3평화재단(이사장 양조훈)은 이날 지표투과레이더(GPR)를 동원, 유해 찾기에 시동을 걸었다.

유족들의 애끊는 심정=한국전쟁이 발발한 후 두 달이 지난 1950819~20일 양일간 제주경찰서 유치장에 수감된 300여 명은 제주공항 인근 밭과 야산으로 끌려 간 뒤 행방불명 됐다.

이들은 4·3사건 당시 귀순 또는 석방자 등으로 요시찰 대상에 올랐다가 전쟁이 터지자 예비검속에 따라 경찰에 구금됐다.

당시 제주경찰서 관할인 제주읍·애월면·조천면 등 제주북부지역에서 300명이 연행된 후 지금껏 행방이 묘연한 상태다. 시신을 찾으려는 유족들의 애틋한 심정이 더해져 최근 암매장 추정지가 제주공항에서 5곳이나 나왔다.

양여하씨(91·)58년 전 공항에서 희생된 오빠의 시신을 찾기 위해 빛바랜 사진을 들고 다니며 백방으로 노력한 결과, 남북활주로 끝 지점인 뫼동산인근에 매장 구덩이가 있다는 사실을 마을주민들로부터 듣게 됐다. 유족들의 끈질긴 노력으로 유해발굴은 재개됐다.

땅 속을 들여다보다=그런데 반세기가 흐르면서 제주공항은 크게 달라졌다. 1979년 공항이 확장됐고, 남북활주로 외에 동서활주로가 개설됐다. 이로 인해 과거보다 3~5m가 복토됐고, 각종 장비로 인해 유해 훼손 가능성이 높아졌다.

양조훈 이사장은 유해 매장 추정지는 5곳이지만 2곳은 활주로와 가까워서 작업이 어렵다필요에 따라 남북활주로를 임시 폐쇄해 발굴을 진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날 투입된 지표투과레이더(GPR)는 고주파를 지하로 쏘아서 반사되는 신호를 분석, 땅 속에 묻혀 있는 물질을 탐사하는 장비다.

장윤식 4·3평화재단 팀장은 이 장비는 문화재 발굴이 많이 사용되는데 자갈과 바위가 많을 경우 탐사에 어려움이 따를 것 같다유골 매장 여부는 앞으로 2주후 나오게 된다고 말했다.

홍성효 제주북부예비검속유족회장은 “300여 명이 어디에서 어떻게 죽은 지도 모른 채 유족들은 지난 세월을 숨죽여 살아왔다차디찬 땅 속에 갇힌 시신들이 햇볕을 볼 수 있어야 진정한 4·3해결을 이룰 수 있다고 말했다.

양윤경 제주4·3유족회장도 “70주년 4·3추념식을 찾은 문재인 대통령은 행방불명인 유해 발굴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한 만큼 이번 유해발굴은 그 어느 때보다 기대가 높다고 말했다.

제주지역 최대 학살터=4·3진상보고서와 각종 증언에 따르면 제주공항에선 194910월 군사재판에서 선고를 받은 사형수 249명을 비롯해 예비검속자 등 최대 800명이 집단 총살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2007~2009년 발굴작업을 통해 이곳에서 388구의 유해를 발굴했고 이 중 90구의 신원을 확인했다. 그러나 300여 명의 희생된 제주북부지역 예비검속 희생자들은 그간 단 한구의 유해도 나오지 않아 유족들의 애를 태우고 있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