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의 반격이 가능한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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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린, 제주대 자연과학대학장·전산통계학과 교수/논설위원

을의 반격이 시작됐다.

시작은 대한항공 조현민 전무의 ‘물벼락 사건’이다. 3월 16일 대한항공 조현민 전무가 광고대행사와 회의를 하던 중, 직원의 답변이 부실하다 하여 욕설과 함께 물 컵을 던진 사건이다.

여기까지는 그렇게 놀랍지 않다. 그 언니인 조현아씨의 땅콩회항, 오빠인 조원태씨의 노인 폭행, 어머니인 이명희씨의 폭언과 욕설을 생각해 보면 조현민 전무의 그 정도 갑질이 놀랍지는 않다. 주변에서의 얘기도 자주 있어온 일이라고 한다. 놀라운 일은 그 다음에 일어났다. 침묵하던 사회 내 을들이 반격에 나선 것이다.

4월 18일 대한항공 직원들이 ‘대한항공 갑질·불법·비리 제보방’을 열었다. 제보방 참가 인원은 빠르게 늘어 열흘이 지난 4월 28일에는 1800여 명이 되었다. 대한항공 전 직원의 10%에 가까운 수다. 신분상의 불이익을 감수하고 을들이 모인 것이다. 이 단톡방을 중심으로 조씨 일가와 관련한 제보들이 수집되고, 사실관계가 검증되고 있다.

제보에 의하면, 조현민씨는 미국 하와이에서 태어나 18세가 되던 해 한국국적을 포기한 미국인이다. 항공사업법상 외국인은 국내 항공사 임원을 맡을 수 없는데도 불구하고, 조현민씨는 2010년 3월부터 6년 동안 진에어의 등기임원을 맡았다. 조사가 필요한 사안이다. 조 회장의 부인 이명희씨와 두 딸이 외국에서 구입한 명품을 국내로 밀반입했다고 폭로한 회사 직원의 글도 올라왔다. 이 역시 조사가 필요하다. 이외에도 많은 제보들이 올라오고 있다.

당황한 조양호 회장은 4월 22일 조현아·조현민 두 딸을 퇴진 시키겠다고 발표했지만 을의 반격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는다. 조양호 일가의 퇴진을 요구하고 있다. 조씨 일가는 약 4300억원의 지분으로 상장 5개사, 비상장 24개사를 지배하고 있다. 상장 5개사는 한진, 한진칼, 대한항공, 한국공항, 진에어로 이 회사들의 시가 총액만 6조원에 달한다. 대한항공만 하더라도 조씨 일가는 11%의 지분으로 왕족행세를 하면서 89%의 주주들에게 손해를 끼치고 있는 셈이다.

J&Partners 법률사무소는 대한항공 지분 3%의 의결권을 확보해 주주총회를 소집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주주총회에서 소액주주들이 가진 의결권의 절반이상이 행사될 경우 조씨 일가의 퇴진이 가능하다.

미국의 경우, 애플의 창업자인 스티브 잡스가 창업한 지 9년 만인 1985년 퇴출당했었다. 당시 스티브 잡스의 의사결정 과정이 주주들을 불안하게 한다는 이유였다. 물론 한국의 경우에는 아직 전례가 없고, 조회장의 퇴진이 현실적으로 쉽지는 않을 것이다.

이번 사건의 시사점은 수십 년 동안 갑질에 침묵하던 을들의 반격이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되돌아보면 을들의 반격은 이미 시작되었었다.

어린 여직원과 성관계를 하고도 괘념치 말라던 민주투사 정치인, 민주화 운동의 대부였던 저항시인, 신인 여배우를 성폭행한 세계적인 영화감독의 갑질도 이제는 용인되지 않는다. 스마트폰으로 언제 어디서든지 녹음과 녹화를 할 수 있고, 수집된 정보를 삽시간에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4차산업혁명의 핵심인 ‘연결된 사회’다. 더 이상 갑질이 통하지 않게 되는 이유다. 시대의 변화를 느끼지 못하는 갑들은 앞으로 더욱 거세진 을들의 반격에 직면할 것이다. 연결된 세상이 우리 사회를 더욱 인간답게 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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