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스틴 교수님’
‘더스틴 교수님’
  • 제주일보
  • 승인 2018.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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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동수 논설위원

예전에 아이들과 함께 찾았던 김녕미로공원은 수벽(樹壁)이 인상적이었다. 언뜻 보기엔 향나무와 측백나무의 교잡종 같았으나 영국의 원산인 ‘렐란디(Leylandii)’이다. 생울타리용으로 많이 사용하며 기후만 맞으면 한 해에 1m 이상 성장하는 속성수란 사실은 나중에야 알았다. 향기가 정신을 맑게 하고 긴장을 풀어주는 효과가 있다.

1995년에 문을 연 김녕미로공원은 당시만 해도 우리나라 최초의 전통 미로공원이다. 전체 형상은 제주도 모양을 하고 있으며, 동양과 제주 문화를 상징하는 음양, 뱀, 고인돌, 조랑말, 하멜과 하멜의 선박 등의 형상으로 조성됐다. 바닥은 붉은 빛의 제주 화산석인 송이로, 미로의 신비감을 자아낸다.

▲김녕미로공원을 만든 이는 제주의 사람과 자연에 푹 빠진 파란 눈의 미국인으로, 제주대 교수를 지낸 프레드릭 더스틴(Fredric H. Dustin)이다. 한국전쟁 참전 용사였던 그는 선교사인 아내의 뜻을 따라 중앙대, 연세대에서 재직하다 1971년 제주에 정착한 후 1994년까지 영어를 가르쳤다. 그런 이유로 많은 제주의 586세대들에겐 김녕미로공원 대표보다 ‘더스틴 교수님’이 친숙하다. 퇴임 이후, 새로운 도전에 나선 것이 바로 미로공원이다. 퇴직에 앞서 10여 년을 손수 땅을 파고 흙을 나르며 나무를 가꿨다고 한다.

김녕미로공원을 이야기하면서 충남 태안반도 서북쪽 천리포 해변에 자리를 잡은 천리포수목원을 빼놓을 수 없다. 김녕미로공원과 ‘서해안의 푸른 보석’으로 불리는 천리포수목원은 형제결연협약을 맺고 있다.

이 수목원의 설립자도 미국인으로, 한국이름 민병갈인 칼 페리스 밀러(Carl Feriss Miller, 1921∼2002)다. 그도 한국에서 해군장교로 복무하다 우연히 찾은 태안의 천리포에 매료되어 수목원을 만들었다. 이런저런 이유로 공원 설립자들은 생전에 많은 교류를 했다고 한다.

▲김녕미로공원 더스틴 대표가 지난 5일 어린이날에 향년 88세로 별세했다. 누구보다도 제주를 사랑했고 기부 등을 통해 이를 몸소 실천했다.

“하루의 행복을 원한다면 술을 마시고, 일주일의 행복을 원한다면 돼지를 잡고, 한 달의 행복을 원한다면 결혼을 하고. 평생의 행복을 원한다면 정원을 가꿔라”라는 서양속담이 있다고 한다. 제주사람들의 행복을 위해 많은 것을 남기고 떠났다. 많은 도민들이 그의 명복을 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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