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간 세대의 마지막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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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방영 제주한라대학교 교수 관광영어학과 논설위원

구십 지난 할머니가 입원했는데 교통사고를 당하면서 치매 증상까지 보였다. 할머니는 움직이지도 못하고 음식을 삼키는 기능도 상실했다. 코를 통해서 줄을 넣어 영양식을 흘려 넣는데, 그 줄을 자꾸 잡아 빼냈다. 말려도 소용없어서 간병인이 두 손을 묶어 두니까 가위 갖다가 끈을 잘라달라고 졸랐다.

할머니를 닦아줄 때 간병인은 ‘주인 잘못 만나 오랜 세월 관리가 전혀 되지 않은 몸이라, 까마귀에게 줘도 뜯어먹지 않겠다’고 말했다. 무게가 30㎏ 정도의 오그라든 몸에 새카만 두 발은 발톱도 모두 까맣고 두텁게 변해서 다듬기도 어려웠다.

거의 무표정한 얼굴로 앞만 바라보는 할머니가 생기를 띄는 시간은 아들이 방문했을 때였다. 아들이 보이면 할머니는 손뼉을 치며 “아덜 오랐져! 아덜 오랐져!”하고 기쁨의 노래를 불렀다. 그리고는 집에 가자고 아들을 졸랐다. 아들은 집을 남 빌려줘 버려서 갈 수 없다고 하면서, 그냥 병원에서 살아야 한다고 설득 작전을 폈다. 아들이 가고 나면 할머니는 간병인에게 아들 돈 들것이니 그만 가라고 했다.

할머니는 불편을 느끼면 한 밤 중에도 큰 소리로 “은희야”하고 부르는데 딸 이름이었다. 막상 딸이 찾아오면 할머니는 무덤덤하였다. ‘어머니는 모든 밭과 재산을 아들 명의로 해주고, 해마다 꺾은 고사리나 깨 농사 지어 짜는 참기름을 며느리만 주고, 왜 딸에게는 단 한 번도 주지 않았느냐’고 딸은 감정이 북받칠 때가 있었다. “경 해여 져 실거라”하고 인정은 하면서도 할머니는 이유를 설명하거나 상처받은 딸의 심정을 헤아리려는 기색은 전혀 보여주지 않았다.

간병인은 옆에서 ‘이미 반은 귀신이 된 할머니에게 그런 것을 물어봐서 뭐하느냐’고 했지만, 딸에게 차별 받던 기억들은 영원히 해소되지 않고 남아 있는 듯했다.

남편을 건강하게 오래 살도록 하고, 아들 잘 키워 자리 잡도록 하여 대를 잇는 것에 목숨을 걸었던 여인들, 딸들은 옆에서 보조하는 존재 이상의 의미가 없던 어머니들, 그 할머니는 지난 세대 어머니의 마지막 표본처럼 보였다. 자신의 생존과 삶의 의미를 남편과 아들에게 맡기고, 죽는 날까지 그들을 위해 헌신하였던 여인들.

이십여 년 전에 만났던 암스테르담 여인은 결혼이 구시대의 유물이며, 자기네 나라에서는 젊은이들 60% 이상이 결혼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 때 우리나라에서는 자라면 학교 다니고, 학교 끝나면 직장 다니고, 그러다가 결혼해서 애 낳아 키우는 것이 당연시되던 시절이기에 그 말이 놀랍게 들렸다.

또 그녀는 한국의 고아를 입양했었는데, 그 아이가 당시 고등학교를 졸업해서 한국이란 나라를 보여주려고 데리고 왔다고 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청소년들에게 1년 동안 진로 탐색 기간을 갖도록 하는 것이 그 나라 방침이라고 하였다. 백인 어머니를 따라 태어난 나라를 찾아온 딸은 금방 한국말로 대화할 듯 보이는 전형적 한국의 얼굴이었다. 입양한 자식에게 그 뿌리와 정체성을 찾도록 돕는 자세도 당시에 우리 사회에서는 드문 일이었다.

이제 우리나라 젊은이들도 결혼을 필수적인 삶의 요소로 여기지 않는다. 임신과 출산도 선택 사항이며 모성의 실현에 두던 가치도 줄어들었다. 암담해지는 환경 문제와 사회 상황을 보면 이런 경향은 당연하고, 앞으로 더 심화될 것 같다. 좋든 싫든 변화는 멈추지 않고, 사라지는 수많은 종들과 마찬가지로 인류도 다가오는 다양한 절멸의 위협들을 안고 갈 수밖에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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