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에 대한 영역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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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원국, 제주테크노파크 행정지원실장/논설위원

법철학에서 거론되는 ‘존재(sein)’와 ‘당위(sollen)’라는 개념이 있다. 학문적 개념으로는 칸트나 헤겔과 같은 철학자들마다 다소의 차이가 있으나, 사전적 의미로는 ‘존재(存在)’는 말그대로 ‘있는 것’을 말하고, ‘당위(當爲)’는 ‘해야 하는가’, ‘하지 말아야 하는가’에 대한 명령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일반 사람들은 ‘존재와 당위’의 개념에 익숙하지 못하다. 그에 비해 ‘진실(眞實)과 허위(虛僞)’에 대해서는 대부분 개념적으로 인지하고 있으며, 관행적으로도 ‘진실’과 ‘허위’를 종종 인용하는 것 같다. 엉뚱하게 들릴지 모르겠으나, 과연 ‘진실’은 ‘존재’의 영역인지, ‘당위’의 영역인지에 대한 물음을 던져본다.

진실은 사실이다. 존재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옳고 그름의 가치판단이 개입될 수 없는 영역인 것이다. 따라서 가치판단이 개입될 수 없는 영역에서 정답 여부를 판단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좀 헷갈린 표현도 있다. ‘불편한 진실’이라는 표현도 자주 접하곤 한다. 이 표현을 자세히 뜯어보면, ‘사실이긴 하나 내게는 불편하다.’ 또는 ‘사실이긴 하나 사람들의 심기나 정서를 불편하게 만든다.’의 의미를 담고 있는 것 같다. 진실이 불편하다고 허위가 되고, 허위가 편한 진실이 될 수는 없는 일이다. 불편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진실도 사실인 것이다. 불편한 진실도 존재하는 것이기에 그대로 ‘있는 것’이다.

근래들어 유감스럽게도 진실규명을 투표나 선거에서 판별하려는 움직임을 보곤 한다. 진실규명은 신빙성 있는 진술, 녹취, 녹화 등의 증거가 될 수 있는 객관적 자료에 의한 논리적인 검증으로 판별해야 할 일이다. 나아가 여론으로 이를 검증하고 판단하거나 사실화해서도 안 될 일이다. 이것이 바로 진실왜곡, 진실은폐를 유발할 수 있는 통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포플리즘(populism)에 의한 진실규명을 경계해야 하는 이유다.

물론 진실에 대해서는 합리적 의심에서 진위(眞僞)여부를 확인해야 한다. 합리적 의심의 정도는 ‘아니면 말고’가 아니라 ‘그럴 수 있다’는 객관적인 가능성에서 출발해야 할 것이다. 합리적 의심의 결과, ‘아니다’라고 규명되면 이에 대해서는 수용하고 의심을 종결해야 한다.

진실임이 밝혀지면, 우리는 그 진실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책임질 일이 있다면, 책임지고 책임이 없다면, 합리적 의심의 올가미를 풀어 주어야 한다.

진실은 사실이다. 이에 대한 규명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진실은 역사가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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