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와 북한유배문화
제주도와 북한유배문화
  • 제주신보
  • 승인 2018.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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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진건, 제주대 교수 교육학 전공/논설위원

2018년 4월 27일, 남북정상회담이 성공적으로 열렸고 이를 계기로 2018년 6월 12일에는 북미정상회담이 열립니다. 참으로 역사적인 순간들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차후의 모든 만남들이 부디 성공하기를 빌어 마지않습니다. 이렇게 남북의 화해 분위기가 조성되면서 저도 요즘 북한의 유배지와 유배문화에 대해 관심을 갖고 들여다보게 됩니다. 제주유배문화에만 머물던 관심이 갑자기 확대되니 격세지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너무 서두른다고 할지 모르지만 이제 우리는 살아생전에 백두산에 다녀올 수 있기를 소원해봐도 좋을 듯합니다. 영조 때 서명응은 함경도 갑산에 유배되자 “하늘이 나로 하여금 백두산 유람을 시키려는 것이 아니겠는가?”하며 기회에 백두산을 다녀왔는데 성공적인 남북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을 지켜보면서 하늘이 우리로 하여금 백두산 유람을 시키려는 것이 분명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비단 저만이 아닐 것입니다.

북한에는 유배지들이 많습니다. 제주와 관련된 유배인들도 많습니다. 임징하의 문집을 보면 작품에 따라 그의 유배지가 잘 정리되어 있습니다. 유배 이전에 쓴 시는 초년록(初年錄)이라고 했고, 평안도 순안으로 유배되는 도중에 쓴 시는 서행록(西行錄), 순안 유배시기에 쓴 시는 안정록(安定錄), 제주로 이배되는 도중에 쓴 시는 남천록(南遷錄), 제주도 감산리에서 유배 중에 쓴 시는 감산록(柑山錄), 한양으로 압송되어 의금부에서 쓴 시는 영어록(囹圄錄)이라고 해서 평안도에서 제주도로 이어지는 유배생활을 파노라마처럼 볼 수 있습니다.

대표적인 제주유배인 김정희는 제주도에서 8년여의 유배생활을 무사히 마치고 1848년 해배되지만 헌종의 묘를 옮기는 문제로 예송논쟁이 벌어지자 이에 연루되어 1851년 함경도 북청으로 다시 유배되었다가 3년 만에 풀려납니다. 기구하다고 할지 모르지만 제주유배 덕분에 그는 ‘추사체’, ‘세한도’ 등의 완성을 통해 동양예술의 최고 경지에 도달할 수 있었으며, 북청유배 덕분에 그 경지가 더욱 심화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1500년의 동양 서예사 속에서 열 손가락에 들어갈 만한 인물로 추사 김정희가 탄생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북청 외에도 함경도에는 많은 유배지들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덕원은 제주 오현의 한 사람인 송시열과도 관련이 깊습니다. 현종, 숙종 대에 발생한 서인과 남인간의 예절에 관한 두 차례 예송논쟁이 있었는데 주자학의 핵심인 종법과 예의 불변성을 왕을 비롯한 모두에게 예외 없이 적용하려던 송시열 등 주자 정통주의와 왕만은 예외라며 예의 가변성을 인정하려는 허목 등 탈주자주의자의 사상적 대립이었습니다. 제2차 예송논쟁에서 서인측이 패배하면서 송시열은 1675년 함경도 덕원으로 유배되었으며 이후 장기, 거제도 등을 전전하다가 마지막으로 제주에 유배되었고 정읍에서 사사됩니다.

이렇듯 제주도와 관련이 깊은 북한 유배지들이 많습니다. 다시 말해 제주의 유배문화를 제대로 말하려면 북한의 유배문화를 함께 말해야 의미와 재미가 더욱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이런 이유에서 앞으로 제주유배문화와 북한유배문화를 함께 논의할 수 있는 기회가 많이 마련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남북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 이후 남북경협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리라 보는데 차제에 제주도와 북한과의 교류협력 차원에서 남북한유배문화를 아우르는 한반도유배문화연구센터가 제주도에 만들어지고 북한과 협력할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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