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6·25 제68주년…오동진 육군 예비역 대령 회상
“무너져가는 나라를 지키기 위해 총을 들었습니다.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도 6·25 전쟁 당시 상황이 생생합니다.”
6·25 전쟁 발발 68주년을 앞두고 지난 23일 참전용사 오동진씨(84)를 만났다.
오동진씨는 제주시 삼도2동 출신으로 30여 년간 군에 몸담다 육군 대령으로 예편했다. 군 생활 동안 받은 훈장과 표창도 무공훈장 화랑, 호국영웅기장 등 15개에 달한다.
제주중에 다니고 있던 오씨는 6·25 전쟁이 발발하자 17살의 나이에 태극기를 어깨에 두르고 동급생 4명과 함께 학도병으로 참전하기 위해 모슬포훈련소에 입소했다.
오씨는 “당시에는 20살이 넘어야 장교로 임관할 수 있었지만 나이를 속이고 시험을 치렀다”며 “당당히 시험에 합격하고 18살에 임관했으며, 창군 이래 최연소 장교로 전장에서 부대원들을 지휘했다”고 말했다.
오씨는 1952년 10월 강원도 인제군에 위치한 12사단 52연대 6중대 3소대장으로 부임했다.
오씨는 “생각만 하면 안타깝다. 보급이 제대로 안 돼 먹을 것조차 없어 물로 끼니를 때울 때도 있었지만 목숨을 걸고 나라를 지키기 위해 전투에 임했다”며 “장비조차 제대로 지급 받지 못한 상황에서 추위와 배고픔을 견디지 못하고 전쟁 중에 죽어가는 전우들을 볼 때마다 가슴이 너무 아팠다”고 당시 기억을 꺼냈다.
매일 밤이 되면 언제 북한군이 습격할지 모른다는 공포감이 오씨를 압박했지만 자신보다 나이 많은 소대원을 이끌고 최전방에서 충실히 임무를 수행했다.
정전을 앞두고 치열하게 공방이 이어지던 1953년 강원지역 고지전에서 고지 탈환 임무를 수행하던 중 팔에 관통상을 입었다. 또 네이팜탄 때문에 손목 부위에 심한 화상을 입고 파편으로 인해 부상을 당하기도 했다.
6·25 전쟁 종전 이후에도 군 생활을 이어가다가 맹호부대의 1진으로 월남전에도 참전했다.
오씨는 전쟁의 고통과 참전용사들의 숭고한 희생정신이 점점 잊혀지는 것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했다.
오씨는 “6·25전쟁이 언제, 왜 났는지도 모르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잊혀지고 있다”며 “나라를 위해 산화한 전우들을 오래 기억했으면 한다”고 밝혔다. 이어 “전쟁의 아픔을 비록 직접 겪지는 못하겠지만 나라에 대한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며 “오늘 우리가 누리고 있는 자유는 공짜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