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철살인 노회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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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경업, 전략사업본부장 겸 논설위원

촌철살인(寸鐵殺人)은 ‘한 치의 쇠로 사람을 죽일 수 있다’는 뜻이다. 아주 짧은 경구나 핵심을 찌르는 말로 남을 당황하게 하거나 마음을 감동시킬 수 있음을 이른다. 중국 남송(南宋·1127~1279년)의 유학자 나대경(羅大經)이 지은 ‘학림옥로(學林玉露)’에서 유래된 말이다.

거기엔 “무기를 한 수레 가득 싣고 온다고 해서 살인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나는 오히려 한 치도 안되는 칼만 있어도 당장 사람을 죽일 수 있다”고 서술돼 있다. 여기서 살인은 무기로 사람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사람 마음속에 있는 속된 생각을 없앤다는 의미다.

따라서 촌철살인엔 상황에 맞게 쓴 날카롭고 번뜩이는 한 마디의 말이 수천 마디의 말을 능가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 아마 상대를 탄복하게 하며 그 마음을 들었다 놨다 하기 때문일 게다. 촌철살인 단 한 마디가 사람들의 가슴에 남는 이유인 듯하다.

▲흔히 “정치인은 말로 먹고 산다”고들 한다. 말 실수 한번으로 이미지가 추락하는 정치인이 꽤 많다. 반면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갖는다’는 속담처럼 말을 잘해 박수를 받는 정치인도 적잖다. 지난 23일 스스로 생을 마감한 고(故)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가 대표적이다.

노회찬 의원은 한국 진보정치를 상징하는 아이콘이다. 학생운동을 거쳐 노동운동에 잔뼈가 굵은 그는 같은 당 심상정 의원과 함께 진보정당 최초로 3선에 성공했다. 그는 생전에 뛰어난 정치감각과 촌철살인의 입담으로 국민들의 정서를 대변해왔다.

▲노 의원은 정치적 비유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며 우리 정치판에 주옥같은 어록을 남겼다. 그는 2004년 17대 총선 당시 한 방송사 토론회에서 “50년 동안 한 판에서 계속 삼겹살을 구워 먹어 판이 새까맣게 됐으니 삼겹살 판을 갈아야 한다”고 ‘판갈이론’을 펼쳐 대중들의 이목을 단번에 사로잡았다.

2016년 탄핵정국 때 국회 긴급 현안질문에서 그는 “대한민국 실세 총리는 최순실이었다”며 당시 황교안 국무총리를 압박했다. 이에 황 총리가 “속단하지 마시라”고 답하자 노 의원은 “속단이 아니라 뒤늦게 깨달았다. 이건 지(遲)단이다”고 되받아치기도 했다,

▲노 의원은 평생 노동자와 사회적 약자의 권리 확대를 위해 분투해왔다. 일명 ‘드루킹 사건’의 유탄(?)으로, 그의 ‘촌철살인’ 화법은 이제 더는 들을 수 없게 됐다. 비통한 일이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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