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異邦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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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영 편집국장

그리스 신화에서 하루아침에 테베의 왕에서 거지나 다름없는 방랑자 신세가 된 오이디푸스는 자신이 왕이었던 테베에서는 버림받지만 아테네에서 시민으로 받아들여지고 테세우스의 보살핌을 받게 된다.

아폴로는 “오이디푸스가 매장되는 곳에는 축복이, 그를 쫓아낸 곳에는 저주가 있으리라”라는 신탁을 내렸는데, 이 예언은 그대로 이뤄진다.

오이디푸스의 운명에 다가가기를 주저하면서도 그를 보호할 용기를 낸 지도자 테세우스는 자신 또한 한 때 이방인이었으며, 내일이 어찌 될지 모르는 한낱 인간이라고 했다.

테베는 권력의 암투로 인해 독재사회로 치닫고 있었지만 아테네는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으로 전락한 오이디푸스를 시민으로 받아들인다.

테베가 분노와 저주의 땅이었다면 저주받은 오이디푸스를 시민으로 받아들인 아테네는 구원과 축복의 땅이었다.

오이디푸스처럼 ‘버려진 사람’을 어떻게 대하는지에 따라 사회의 성숙도를 증명할 수 있다.

▲내전을 피해 제주에 온 500여 명의 예멘 출신 난민들에 대해 의견이 분분하다.

지구촌 난민 문제가 우리 사회의 문제가 된 첫 사례이자, 우리도 이 문제에 진지하게 동참할 때가 됐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대한민국도 이미 1992년 12월에 국회 비준을 거쳐 난민협약에 가입했다.

이방인에 대한 두려움이 이상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제주에 온 예멘 난민이 무슬림이라는 이유로 ‘테러리스트’나 ‘잠재적인 성범죄자’로 연결시키는 것은 무리가 있다.

독일 작가 테오도어 폰타네는 “낯선 사람들이 제일 먼저 우리에게 고향이 있다는 사실을 가르쳐 준다”고 역설했다.

난민 문제는 윤리적·인도주의적 측면도 고려돼야 하고, 법적·정치적 문제와 함께 사회적 문제도 종합적으로 검토돼야 한다.

남의 일로만 여겨졌던 난민 문제가 우리 사회에 현실로 다가온 만큼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한 종합적인 정책 개발과 더불어 전문 인력 양성도 시급하다.

제주에 온 예멘 난민들에 대한 심사가 진행되고 있어 어떻게 결론이 날지는 모르지만 이를 우리 사회가 난민 문제 논의의 시발점으로 삼아야 하는 것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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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는감성으로살수없다. 2018-07-29 20:40:48
비난은 두려운지 중립인 척 글을 작성했으나
자신의 아버지를 죽일 것이라는 신탁으로 추방된 오이디푸스와
스스로 예멘의 서민들을 외면하고
나라를 버리고 온 한국에 온 부유층 예멘인들과는 비교대상이 아니고.
경북도민일보 김기포와 경향신문의 송두율이 가 이미 테오도어 폰타네를 언급을 했기에
창의성이 부족하고.
유럽에서 일어난 수많은 예멘인 집단 강간 테러 살인 사건등으로 자국민이 공포심을 갖고 있는 것을 이방인에 대한 두려움으로 축소시켰고.
난민협약에 가입한 일본이 왜 난민을 안 받고 있는지 알고있고
메르켈이 실패한 정책을 윤리 인도주의식으로 피상적으로 포장하는 의도가 궁금함.
유튜브 등으로 무슬림들의 문화를 충분히 접한 국민들이 보기엔 설득력이 많이 부족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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