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의 연대기
괴물의 연대기
  • 제주신보
  • 승인 2018.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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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대혁, 시인·문화평론가

불법과 일탈 행위를 통한 괴물의 창출은 ‘연대기적(chronological)’이다. 어떤 괴물도 한순간에 느닷없이 생겨난 것이 아니라 오랜 기간에 걸쳐 성장해온 것이다. 현실의 혼란과 고통, 불안의 탄생과 성장은 망각의 동물인 우리들 몰래 독버섯처럼 음습한 곳에서 자라왔다. 그래서 괴물의 연대기를 작성하고 그 싹을 도려내지 않으면 안 된다.

임철우는 「연대기, 괴물」(문학과지성사, 2017)에서 ‘달규’라는 노숙자의 죽음을 이야기한다. 지하철에 투신자살한 그의 죽음은 우표딱지만 한 기사로 실려 전하는데, 그에게는 현대사 속 괴물의 성장담이 자리한다. 아버지 ‘김종확’은 서북청년단에 속했던 인물로, 스스로를 ‘빨갱이 사냥꾼’이라 부르면서 수많은 양민들의 목숨을 빼앗는다. “이 쌍간나 새끼들! 이런다고 살려줄 거 같나? 나, 김종확이 누군지 몰르는구만. 4·3 폭동 때 이 갈고리로 즉결 처단한 빨갱이 숫자가 얼마나 되는 줄 알간?”(68쪽) 서북청년단원이었던 그는 제주뿐만 아니라 남쪽 바다 섬사람들마저 죽음으로 몰아넣는다.

아들 달규는 부모도 모른 채 고아처럼 떠돌다 베트남에 파병되어 그 역시도 수많은 민간인들을 학살한다. 제대 후에는 전쟁의 고통을 잊으려 줄곧 뱃사람으로 떠돌게 되는데, 마침내는 기도원에서 여생을 마치려 한다. 그런데 기도원에서 죽은 듯 살아가던 그의 앞에 아버지가 나타난다. 세월호 참사 추모 리본을 제거하겠다는 서북청년단 재건준비위원회 사람들 가운데에 아버지는 서 있었다. 그는 아버지를 찾겠다고 과천청사 앞을 서성이는데 마침내는 투신자살한다. 소설은 괴물 아버지 ‘김종확’과 아들 ‘달규’를 중심으로 제주 4·3항쟁, 6·25전쟁, 월남전, 광주항쟁, 세월호까지 이어진다. 소설은 한 노숙자의 죽음 속에 현대사의 아픔이 어떻게 똬리를 틀고 있으며, 어떻게 괴물이 성장했는지 그 연대기를 서사화하고 있다.

괴물의 연대기는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기무사의 계엄령 문건에도 존재한다. 탄핵 심판 기각을 가정한 계엄령 시나리오는 과거에 자행했던 독재정권의 행태를 이어받았다. 평화로운 촛불시위를 보면서도 그들은 기계화 6개 사단, 기갑 2개 여단, 특전 6개 여단 등으로 계엄임무수행군을 구성하고, 서울 시내에 탱크, 장갑차, 무장병력, 특전사 등을 투입하는 대규모 군사작전을 짜고 있었다. 만일 계엄령 문건대로 실행이 됐더라면 역사는 또다시 불지옥을 연출했을 것이다.

한국에서 계엄령은 여순사건, 4·3사건, 4·19혁명, 5·16군사정변 등 총 10번에 걸쳐 나타나는데, 대부분 군부 독재세력이 권력을 찬탈하거나 유지하기 위해 행했던 것이었다. 시민들의 안녕과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국가 위기 상황에 발령한 계엄령이 아니었다. 계엄령을 선포하면서 광주 시민들을 희생양으로 삼아 전두환은 권력을 잡았고, 6·10항쟁 당시에도 계엄령 선포가 기획됐다고 한다.

임철우의 소설 속에서 괴물은 “온몸으로 피 냄새를 풍기는, 세상 모든 악의 형상이었다. 끄끄끄, 끌끌끌끌. 뱀처럼 길고 시뻘건 혓바닥을 널름거리며 놈이 그를 손짓해 부르고 있었다.”(100쪽)라고 묘사된다. 현실 속 괴물은 그보다 더하면 더했지 절대 덜하지 않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