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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한성, 재 뉴질랜드 언론인

얼마 전에 자유한국당이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렸다. 지난 6월 지방선거 참패에 따른 후유증에서 벗어나기 위한 자구책이다. 국회 재적의원 299석 중 112석, 광역단체장 17석 중 2석, 기초단체장 226석 중 53석, 광역의원 824석 중 136석, 기초의원 2926석 중 1009석을 가진 제1야당의 몸부림이다.

정당은 공공 이익을 실현하기 위해 정치적 견해를 같이하는 사람들이 조직한 집단이다. 궁극적으로 정권을 잡는 게 목적이다. 모든 정당들이 나름대로 그런 가능성에 가까워지기 위해 애쓴다. 제1야당은 그런 면에서 보면 다른 정당들보다 집권에 대한 열망이 클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내각제를 채택하고 있는 나라에서 제1야당은 기회만 되면 언제든지 정권을 잡을 태세가 돼 있다는 걸 보여주려고 노력한다. 그림자 내각을 구성해 정부의 각 부처를 전담 마크하는 것은 물론 대응 정책을 개발하는 데도 힘을 아끼지 않는다. 대통령제라고 해서 달라지는 건 아니다.

자유한국당이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린다는 건 그런 면에서 보면 보통 일이 아니다. 그것도 집안 일로 말이다. 게다가 위원장은 외부 인사를 영입했다. 100명이 넘는 국회의원을 둔 정당이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다른 사람에게 손을 내밀고 있는 셈이다.

이런 일은 비단 자유한국당뿐만이 아니다. 한국의 정당들이 너나할 것 없이 다 비슷한 행태를 보인다. 걸핏하면 구원투수라며 명망 있는 인사를 불러들인다. 하기는 대학교나 다른 사회조직에서도 심심찮게 비상대책위원회라는 게 등장하는 걸 보면 어느덧 자연스런 일이 됐는지도 모른다.

물론 새로운 발상으로 새로운 계기를 만들어보겠다는 의도는 이해된다. 하지만 정권을 잡아보겠다는 정당이 그러는 건 조금 다르다. 국가를 경영해보겠다는 사람들이 시절이 좋을 때는 주인 노릇 하다가 힘든 일이 닥치면 뒤로 물러서 있겠다는 발상과 다를 게 없다. 무책임한 일이고 무능력을 드러내는 일이기도 하다.

지도자들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덕목 중 하나는 위기관리 능력이다. 국가는 물론이고 조그만 집단에도 위기가 닥쳤을 때 그걸 타개할 수 있는 지도자가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그 조직이나 국가의 운명은 냉엄하게 갈린다.

정당은 지도자가 돼보겠다고 모인 사람들의 집단이다. 지도자가 물러나면 누군가가 대신 깃발을 들고 앞에 나설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한국의 정당들은 그런 지도자를 키우려 하지도 않고 되려고 하는 사람도 별로 없는 것 같다. 그러면서도 정치판에 한 번 발을 들여놓으면 죽을 때까지 떠나지 않으려 한다.

뉴질랜드에서는 정당이 선거에서 참패하거나 리더십에 문제가 생기면 대개 지도자가 모든 책임을 지고 자리에서 물러난다. 그리고 그 안에서 새로운 지도자가 나타나 새로운 길을 모색한다. 역할이 끝난 사람들은 물러나고 새로운 사람들이 그 자리를 다시 채우는 것이다.

한국의 정당들도 이제 어른스러워질 때가 됐다. 위기관리 능력도 키우고 책임감도 가져야 한다. 그리고 역할이 끝난 사람은 조용히 물러날 줄도 알아야 한다. 그래야 국민들이 정치를 신뢰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어려운 일이 생길 때마다 뒷전에 서서 누가 해결해주기를 기대하는 사람들이 정권을 잡는다는 건 모두에게 불행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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