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릇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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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종호 수필가

한 뼘의 그늘이 아쉽다. 일찍 물러간 장마 탓일까. 연일 무더위가 맹위를 떨친다. 폭염을 주의하라는 재난 안내 문자와 방송은 하도 자주 보고 들어 그 내용을 줄줄 되뇔 정도다. 그저 퀭한 모습으로 미동조차 않는데도 찌걱찌걱 땀이 흐른다. 짜증나는 일상 속에서 시원함이 곁들여지는 숲이나 계곡 혹은 바다가 그리워짐은 당연지사일 게다.

이럴 때면 상념의 끝 언저리에서 어김없이 물안개처럼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유년의 기억들. 흐르는 세월에 묻혀 파스텔 잔상처럼 점점 희미해져 가지만 결코 지워지지 않는 그 흔적들을 따라 회상의 길을 되짚어 간다.

그 시절 동네 아이들에게 여름방학은 축제의 나날이었다. 공부하지 않는다고 부모님께 혼날까 봐 두렵기도 했지만, 그도 잠시 눈치만 잘 살피면 하루가 마냥 신나고 즐거웠다. 바로 코앞이 바다인지라 아이들은 아침 식사를 하고 나면 으레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기수지역에 모이곤 했다.

물장구 치고, 수영 실력을 뽐내고, 물속 술래잡기로 한참을 보내고 나면 다들 바위에 엎드려 몸을 말린다. 점심도 건너 뛰어 시장기가 돌 때쯤 아이들은 바릇잡이에 나선다. 보말이며 성게, 군벗, 소라, 게, 군소 등 품 넓은 바다가 선사하는 먹거리들을 웃옷을 보자기 삼아 한가득 담고 집으로 향한다.

어머니께선 매일 놀기만 하면서 빨랫감만 늘린다고 꾸중하시면서도 이내 삶아 주셨다. 군것질거리가 별로 없던 시절 바릇잡이 결과물들은 참 별미였다. 게다가 입가에 번지는 흐뭇한 미소는 덤.

우리들의 축제는 개학이 가까워지면서 끝난다. 밀린 숙제를 한꺼번에 해야 했기 때문이다. 특히 온갖 상상력을 발휘하여 몰아 쓰는 일기는 말 그대로 일기가 아니고 월기였다. 선생님께선 속내를 다 아시면서도 억지로라도 숙제를 하려는 정성이 갸륵해 보여서인지 몰라도 ‘참 잘했어요!’ 도장을 찍어주셨다.

즐길 거리 먹거리의 산실이었던 그 바릇(‘바다’의 제주어)잡이가 요즘은 체험 현장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마을 공동 어장을 활용하여 수익을 창출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보말 요리 전문점까지 있어 상전벽해라는 말을 실감케 한다.

해를 거듭할수록 무더위가 심해지는 듯하다. 이 여름 만사 훌훌 털어버리고 시원한 바닷바람 맞으며 바릇잡이에 나서봄은 어떨지. 수확물이야 예전 같지 않겠지만, 기억의 편린들을 더듬으며 한 움큼씩 추억을 주워 담아 소쿠리 가득 향수(鄕愁)를 채워보자. 아마도 이 여름이 마냥 싫지만은 않을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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