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출의 품격
노출의 품격
  • 제주신보
  • 승인 2018.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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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길주 수필가

무더위가 가히 살인적이다. 더위 때문에 많은 생명들이 고통을 받으며 죽어가고 있다. 사람도 예외는 아니다. 그렇다고 하늘을 원망할 수만은 없는 일이니 속만 태운다. 요즘은 더위를 피하는 게 삶의 최우선 과제가 되어버렸다.

몸에 걸치는 옷가지들도 거추장스런 군더더기에 불과하다. 코디나 치장은 엄두도 내지 못한다. 그저 홀라당 벗고 싶을 뿐이다. 그럴 수 없음에 이맘때의 옷 입기는 고역이다.

사람은 누구나 맨몸으로 태어난다. 죽어 염할 때도 맨몸이다. 가리면서 삶이 시작되고 현생의 옷을 벗으면서 삶을 마감한다. 그러니 싫든 좋든 살아있는 한 옷은 입어야 한다.

여름은 노출의 계절이다. 더위 때문이긴 하지만 멋진 몸매를 자랑할 기회이기도 하다. 노출을 반라(半裸)라고도 한다. 절반의 벗음이다. 연예인들은 청중의 시선을 끌기 위하여 갖가지 방법으로 노출한다. 배꼽을 드러내기도 하고, 힙이 드러나게 끈 팬티까지 입고 나온다. 요즘은 연예인뿐만 아니라 일반인들도 그야말로 특정 부위만 아찔하게 가린 옷차림으로 거리를 활보한다. 보는 사람이 민망할 정도다. 시선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당황스러울 때가 많다.

일상에서 드러내지 말아야 할 것은 맨몸만이 아니다. 주요 부위를 가리는 속옷도 마찬가지다. 속옷의 노출은 점잖지 못하거나 야한 느낌마저 든다. 그렇지만 이젠 그런 속옷 노출도 흔하다. 브라나 팬티가 숨겨 입는 옷이 아니라 당당이 내 보이는 패션으로 자리 잡고 있는 듯하다. 사회관계망 서비스(SNS)로 삶의 은밀한 모습들까지 주고받다보니 사람들의 시선이 무뎌졌다고나 할까. 왠만한 자극으로는 시선을 끌지 못하니 노출의 정도가 점점 심해지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정서는 아직도 토플리스(topless) 차림마저 선뜻 받아들이지 않는다. 적당히 가려진 은은한 노출이라야 품격 있는 아름다움으로 봐 준다. 사실 홀라당 까발려 놓으면 몸매의 아름다움을 좇던 시선은 만족을 하는 게 아니라 민망해 진다. 본능적으로 시선을 돌리게 된다. 적당한 노출이라야 봐줄 수 있다는 심리적 반응이다.

늘씬한 각선미를 뽐내는 것도 단순히 옷의 길이 문제가 아니다. 슬릿(slit)이 들어간 맥시스커트(maxi skirt)라면 그 어떤 미니스커트보다 다리의 각선미를 멋있게 드러낼 수 있다. 걸음마다 휘날리는 치마 자락 덕분에 그 매력은 섹시함으로 드러난다.?

대놓고 보여주는 것만이 노출의 정답도 아니다. 한 겹 가려서 더 아찔한 경우도 있는 법이다. 시스루(see-through) 스커트를 통해 두 다리가 보일락 말락 묘한 상상력을 자극하는 패션으로도 자신의 몸매의 아름다움을 어필할 수 있다. 여름철 몰래카메라나 성범죄도 지나친 노출이 그 대상일 수 있다.

인간의 욕망은 한이 없다. 그렇다고 원하는 대로 다 채울 수는 없는 일이다. 적당히 자제하며 욕망을 줄여나가는 게 허기나 좌절을 최소화하며 만족을 얻는 삶이다. 그 만족이 곧 행복이다. 행복도 얻고 품격도 잃지 않는 노출. 자신을 보호하고, 바라보는 시선에 호감을 줄 수 있는 옷차림이 무엇보다 필요한 계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