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카로스와 기무사령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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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섭 편집위원

1980년대 후반. 병장일 때다.

부대 내 북쪽에는 군 골프장이 있었다. 가끔 연대별로 잡초를 제거하기 위해 집합하곤 했다. 연대병력이 몇 개 횡렬로 서서 잡초를 제거하면 골프장이 깨끗해진다.

시간이 오래 걸리지도 않는다.

병장도 잡초 제거에 예외일 수는 없다. 잡초 제거가 끝난 후 중대로 되돌아오기 위해 부대원들이 모였는데 부근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고 있는 군인들이 보였다.

제때 이발을 하지 않아 머리가 귀를 덮을 정도니 참 가관이었다.

처음에는 군기 빠진 방위병인 줄 알았다.

그래서 “이 꼴통들 기합 한번 잡겠다”며 가까이 갔다.

그런데 상의 파란색 유니폼에 ‘국군 보안사령부’라고 적혀 있었다. 우리 부대 소속이 아니라서 발길을 돌려야 했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크레타의 미궁을 만든 이는 다이달로스라는 장인이었다.

그는 나중에 미노스 왕의 총애를 잃어 탑 안에 갇히게 됐다.

그는 아들 이카로스와 함께 탈출하기로 마음먹었다.

새털과 밀초로 날개를 만들었다. 섬을 탈출하던 날 그는 아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카로스야, 너무 낮게 날면 습기가 날개를 무겁게 할 것이고, 너무 높이 날면 태양열에 의해 날개가 녹을 터이니 내 뒤만 따라 오너라.”

그러나 이카로스는 하늘을 나는 기쁨에 사로잡혀 점점 높이 올라갔다. 태양열은 날개의 밀초를 녹였다. 이카로스의 몸은 바닷 속으로 사라졌다.

▲보안사령부든 기무사령부든 하는 짓이 꼭 이카로스를 닮았다.

이카로스는 아버지 말을 안 들어 추락했지만, 보안사나 기무사는 국민의 말을 안 들어 추락했기 때문이다.

하늘을 나는 재미에 푹 빠져 하늘 끝까지 오르려 했던 이카로스나 민간인 사찰, 계엄령 문건 의혹 등 주제넘은 행위로 지탄을 받은 보안사·기무사가 뭐가 다른가.

그래서 추락한 것이다. 기무사가 군사안보지원사령부로 명칭이 바뀐다고 한다.

이름만 바뀔 게 아니라 하는 일이 바뀌어야 한다.

특히 주제넘게 민간인을 사찰하는 것에 대해서는 엄정하게 다뤄야 한다.

또한 주요 도시 11곳에 있고, 대령이 부대장으로 있는 60단위 부대는 옥상옥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는 만큼 없애는 게 당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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