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주나물 키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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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운 동티모르 교육자문관·시인·수필가

숙주 나물 어떻게 만드나요?”

살짝 데쳐서, 소금 참기름에 무치기만 하면 되요.”

한국에 있는 집사람에게 카톡으로 물었더니 금세 답장이 왔다. 새 밥을 짓고 전해준 레시피 대로 숙주나물을 만들어 저녁상에 올리니 맛이 정말 일품이었다. 아삭하고 깔끔한 맛이 참기름의 고소한 향속에 어우러져 깔끔하고 상큼했다. 난생 처음 직접 키운 녹두 나물 반찬이다.

지난주에 오에쿠시라는 곳으로 출장을 갔었다. 이곳은 아주 특이하게도 인도네시아 영토 속에 섬처럼 분리되어 있는 조그만 동티모르 땅이다. 그래서 육로로는 못 가고 비행기나 배를 이용하게 된다.

그곳에 머물면서 코이카 봉사단원인 정선생님을 만났는데 굳이 집으로 가자고 해서 댁을 방문했다. 선생님 댁은 오에쿠시 대통령 댁 이웃집이었다. 그러나 두 집 모두 대문도 없고 출입을 막는 사람도 없다. 나도 들어가서 사진도 찍고 집 구경도 했다. 대통령은 관사에 머물고 가끔씩 내려온다고 한다. 또 옆집은 대통령 사촌이 사는데 매일 빵을 재래식으로 구워 팔고, 빵 맛이 기가 막히다고 한다. 다음날 아침 일찍 옆집으로 건너갔다. 물론 이웃과 울타리가 없다. 장작불이 맹렬히 타고 있었다. 장작이 다 타자 그 숯불에 가로 세로 1.5m 크기의 빵 오븐을 올려놓고, 오븐 위에도 숯불을 올려놓는다. , 아래를 동시에 가열하여 굽는 것이다. 오븐을 여니 고소한 빵 냄새가 마당 가득 퍼진다. 빵은 한 개에 10센트다. 여섯 개를 사다가 정선생님과 아침을 먹었다. 다섯 개에 1달러하는 아보카도 육즙을 발랐다. 아보카도의 부드러움 위에 고소함과 담백함과 바삭함이 함께 어우러진 최고의 빵 맛이었다.

식사를 하면서 정선생님이 숙주나물 키우기를 권했다. 혼자 살려면 이런 것도 익혀야 한다고 했다. 페트병을 반으로 잘라서 밑에 구멍을 내고 햇빛을 차단하고 사나흘 물만 주면 된다고 했다. 그래서 집으로 오자마자 우선 녹두를 사러갔다. 한국 것보다 알갱이가 아주 작았다. 두 컵에 1달러다. 페트병을 잘라 밑에 물 빠질 곳들을 만들고 한 컵 분량의 녹두를 넣고 물을 붓은 다음 수건으로 햇빛을 이중으로 차단했다. 하루에 세 번씩 약간의 물을 부어주었다. 사흘이 지나자 병 위쪽까지 싹들이 밀고 올라오기 시작했다. 나흘 후에 꺼내 보니 너무 빽빽이 들어차 빼내기가 힘들었다. 반은 싹이 나고 반은 너무 공간이 좁아서 발아가 안 되었다. 반을 꺼내고 나머지는 다시 병에 넣어 키웠다. 다듬는 것도 문제였다. 일일이 녹두껍질을 제거하고 검은 뿌리도 잘라내야 했다.

시장에선 깨끗하고 통통한 것만 보아왔다. 한 줌의 녹두 나물도 이렇게 힘든 과정을 거쳐 좌판에 나온다는 것을 알게 되니, 새삼 숙주나물이 싸야할 이유가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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