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 상피제(相避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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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경업, 전략사업본부장 겸 논설위원

고려와 조선은 혈통을 중시하는 신분제(身分制) 사회였다. 그래서 일까. 아버지나 할아버지를 잘 둔 덕에 손쉽게 관직에 나아갈 수 있었다. 왕실과 공신, 고위 관료 자손들이 괴거시험을 보지 않고 벼슬길에 오르는 음서제(蔭敍制)가 시행됐기 때문이다.

부모와 조상의 음공(蔭功)에 따라 자손을 관리로 채용하다 보니 때론 조정엔 동생이나 사위·조카에 이르기까지 친인척으로 가득차기도 했다. 자손대대로 관직을 세습하려는 지배계층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편법 장치인 게다. 특권의 대물림이 아닐 수 없다.

▲한데 아이러니한 건 그럼에도 정실 개입으로 인한 부정과 권력의 집중화를 막기 위한 인사제도를 동시에 운영했다는 점이다. 가족이나 친족이 같은 관청 또는 부서에 근무하지 못하도록 하는 상피제(相避制)가 바로 그것이다. 서로 연관 있는 직책도 배제됐다.

고려 선종시대(1092)에 성문화됐다. 지금으로부터 1000년 이상 된 인사제도인 셈이다. 조선시대엔 더욱 엄격히 적용돼 출신지에 아예 공직자를 파견하지 않았다. 거기에다 상피제에 걸리면 양사(兩司, 사헌부·사간원)에서 문제를 지적해 그만두지 않을 수 없었다.

▲최근 서울 강남의 유명 사립고에서 불거진 ‘쌍둥이 자매 1등 사건’이 구설수에 올랐다. 이 학교 교무부장의 2학년 쌍둥이 딸이 문과와 이과에서 나란히 전교 1등을 한 것이다. 쌍둥이 자매는 1학년 1학기에 전교 59등과 121등에 불과했고, 2학기엔 2등과 5등이었다.

이에 일부 학부모를 중심으로 ‘시험지 유출 의혹’이 제기되면서 논란이 확산됐다. 학부모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 관련 의혹 글이 여럿 올라오고,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까지 등장한 게다. 그 진상을 가리기 위해 서울시교육청은 특별감사에 착수한 상태다.

▲사실 여부를 떠나 찹찹한 심정을 금할 길이 없다. 현재의 입시제도에 대한 불신이 녹아 있어서다. 내신과 학생부종합전형 평가로 이른바 좋은 대학 입학 여부가 결정되는 상황에서 어느 누가 자유로울수 있을까. 각박한 현실이다.

이런 와중에 교육부가 대책을 내놓았다. 내년 3월부터 고등학교 교사와 자녀를 한 학교에 배치하지 않는 ‘고교 상피제’를 도입키로 한 게다. 그러자 학생의 학교선택권을 제한하고 교사를 잠재적인 범죄인으로 몰아가고 있다는 반대 목소리가 곳곳에서 나온다. 이래저래 교육계가 시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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