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값 잘 쳐주는 사회
나이 값 잘 쳐주는 사회
  • 제주신보
  • 승인 2018.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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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한성 재 뉴질랜드 언론인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한국에서도 나이가 훈장이기는커녕 점점 짐이 돼가는 느낌이다. 일하고 싶어도 명예퇴직을 걱정해야 하고 정년도 대비해야 한다. 밀려난다는 느낌을 떨쳐버리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나이가 들면 알게 모르게 취직이나 결혼을 하는 데도 벽이 높아진다.

한국인들은 유독 나이에 민감하다. 나이 값도 못한다는 말은 큰 욕이다. 그래서 사람을 만났을 때 나이를 물어보는 일도 흔하고 동갑내기도 태어난 달과 날을 따져 위아래를 정해야 직성이 풀린다. 초등학교 학생이나 환갑을 넘긴 사람이나 그 점에서는 크게 다를 바가 없는 것 같다.

사실 과거에 나이는 인격의 한 부분이었다. 한 사람의 사회적 지위와 연륜을 상징하는 기호이자 계급이었다. 그래서 어른들의 나이를 물어볼 때는 깍듯이 예의를 갖추어 나이라는 쉬운 우리말 대신 연세나 춘추라는 어려운 한자말을 쓰기도 했다. 그만큼 조심스러워했다는 얘기다.

그러던 나이가 정년과 명예퇴직 등 경제 활동과 밀접한 관계를 갖게 되면서 짐스런 존재가 돼가고 있는 것이다. 드러내놓고 밝히지 않는다 해도 취직을 할 때 연령제한이 있으리라는 것쯤은 누구나 다 안다. 이력서나 입사원서에 주민등록번호나 생년월일을 적는 칸이 있으면 쉽게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뉴질랜드에서는 사람을 만났을 때 나이는 잘 물어보지 않는다. 문화적 전통에 따라 사생활의 영역으로 남겨두는 것이다. 나이가 많고 적음에 따라 사회적 지위가 달라지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굳이 알 필요도 없는 것이다. 어른이나 아이나 모두 위아래가 없는 대등한 인간 대 인간일 뿐이다.

그런 까닭에 직장에 들어갈 때 이력서에도 나이는 쓰지 않는다. 이력서에 들어가는 건 학력과 경력, 그리고 자신을 소개하는 내용 정도가 전부다. 이력서에는 나이는 물론이고 얼굴 사진도 붙이지 않는다.

물론 학교 입학이나 졸업연도를 적으면 그걸 보고 대충 나이를 짐작은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게 정확하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 사회생활을 하다가 30대, 40대, 50대에 다시 학교에 가는 사람들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이력서에 나이를 쓰지 않는다는 건 일할 의사와 능력만 있으면 나이와 관계없이 취직할 수 있다는 얘기다. 어떤 일을 하는 데 나이가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지 않는 한 나이를 이유로 사람을 떨어뜨렸다간 나이차별이라는 이유로 법의 제재를 받을 수 있다. 인종차별과 다를 게 없는 인권침해인 까닭이다.

물론 뉴질랜드에도 은퇴연령이라는 건 있다. 65세다. 누구나 그 때부터 연금을 받을 자격이 주어진다. 젊었을 때 부자가 돼 스스로 조기 은퇴를 선택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일하고 싶은 사람은 70대, 80대에도 얼마든지 취직해서 일할 수 있다. 노년층의 건강이 좋아지면서 그런 사람들이 점점 늘고 있다는 소식이다.

일부 직장에서는 나이가 지긋하고 경험이 많은 중장년층이나 노인들을 선호한다는 얘기도 들린다. 연륜과 경험 등 나이 값을 제대로 쳐주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젊은이들의 설자리가 점점 좁아지는 역차별 현상까지 나타난다는 것이다. 오뉴월 하루 볕이 무섭다고 할 만큼 시간까지 따지며 나이를 계산하던 사람들이 나이 값을 제대로 쳐주려하지 않는 것과는 대조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