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착한 며느리의 효심
어느 착한 며느리의 효심
  • 제주신보
  • 승인 2018.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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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흥식, 수필가

아침 식사를 마치고 주방에서 설거지를 하고 있는 며느리는 오늘도 아침 출근을 하고 있는 아들에게 80대의 할아버지에게 용돈 3만 원만 주고 가라고 말했다. 아들은 “없어요”하고 그냥 나가버렸다. 설거지를 하다가 부자간의 대화를 듣고 한참 무엇을 생각하더니 밖으로 달려 나갔다. 버스를 막 타려는 남편을 불러 세워 손을 내밀며 “여보 돈 좀 주고가요”, “뭐 하게?”, “애들 옷도 사야하고 여고 동창 계모임도 가 봐야 해요.” 안주머니에서 몇 만 원을 꺼내며 점심 값, 대포 값이 어쩌고저쩌고 하는 것을 몽땅 빼앗아 차비만 주고 집으로 돌아왔다. 시아버지께 그 돈을 몽땅 드리며 “아버님 이 돈으로 친구들과 소주도 사 잡수시고 바람도 쐬고 오세요.” 눈물이 쏟아지려는 시아버지는 며느리가 고마워서 말을 잊고 서 있었다.

그날 저녁 남편이 퇴근하고 돌아와서는 “왜 애들 얼굴에 구정물이 흐르고 더러우냐?”고 물었다. 그 다음날도 애들 꼴이 더러워져 가고 있었다. 남편은 화를 내며 “당신은 하루 종일 뭘 하기에 애들 꼴을 저 모양으로 만들어 놓았소? 남편의 화난 소리에 아내도 화난 목소리로 ”저 애들을 곱게 키워 봐야 당신이 아버지께 냉정히 돈 3만 원을 거절했듯이 우리가 늙어서 3만 원 달래도 안 줄 거 아니에요? 당신은 뭣 때문에 애들을 깨끗이 키우려고 해요?” 가슴을 찌르는 아내 말에 무엇인가를 느낀 남편은 고개를 떨 구고는 아버지의 방문을 열었다. 늙은 아버지는 아들의 무정함을 잊은 채 “회사일이 고되지 않느냐? 환절기가 되었으니 감기 조삼하라”고 타이르고 있다. 아버지의 더 없는 사랑에 아들은 그만 엎드려 엉엉 울고 말았다.

독일 속담에 ‘한 아버지는 열 아들을 키울 수 있으나 열 아들은 한 아버지를 봉양하기 어렵다’는 말이 있다. 자식이 배부르고 따뜻한가를 늘 부모는 묻지만 부모의 배고프고 아프고 추운 것을 자식들은 잘 알지 못한다. 자식들의 효성이 지극하다 해도 부모의 사랑에는 미치지 못한다. 우리는 부모가 짐이 되고 효가 귀찮게 생각되는 요즘 세상에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

효도는 인간이 근본을 잊지 않고 그 은혜를 갚는 천지보은(天地報恩) 정신에서 나온다. 옛 고서에 ‘만물의 근본은 하늘에 있고 인간의 근본은 조상’이라고 했다. 우리 민족은 고대 이래로 동방예의지국이라고 한다. 효도는 부모를 잘 섬기는 일 일이다. 효도의 대상은 부모뿐만 아니라 부모를 낳아 주신 조부모도 잘 모셔야하고 그 위의 조상님도 잘 모셔야 한다. 그러므로 조상님의 제사도 잘 모시고 선령님들의 묘소도 잘 관리하는 것도 효도에 포함된다. 따라서 효도란 ‘자연의 순리에 순응하고 인간 윤리에 거스르지 않고 조상님과 부모를 잘 섬기며 형제 친척 간에 우애하는 것’이라 할 것이다. 오늘날의 현실을 보면 비통함을 글할 길이 없다.

특히 핵가족 시대에 자녀교육에 대한 바른 교육이 시급하다고 본다. 옛 속담에 ‘세 살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는 말은 가정교육에 대한 절실한 필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이제는 인간의 고귀한 존엄성과 효도란 무엇인가에 대한 교육이 시급하며 부모님의 은혜에 대한 효도교육을 하는 국가정책이 필요하다고 본다. 지금 나는 어떤 자식인가? 효는 나 자신은 물론 이 지상의 인류가 흥하고 망하는 대우주의 질서인 것이다. 이제는 그동안 부모님을 원망하고 미워해 온 바가 있다면 원망과 미움을 다 놓아 버리고 부모님께 참된 효자 효녀로 거듭 태어나서 감사의 인사를 올려야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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