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굴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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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복언, 시인·수필가

사람들은 저마다의 셈법으로 인생을 살아간다. 나는 학교에서 배운 가감승제의 기본 셈법을 토대로 살다 보니, 무미건조하고 이건 아닌데 하고 반성하는 수도 적지 않다. 말이나 글을 통해 나와는 전혀 다른 셈법으로 아름답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나면 경탄하며 머리를 숙이게 된다.

일전에는 저녁에 동네길을 걸으며 대화하는 중에 아내가 한 말이 귓전을 맴돈다. “1000원을 벌려고 목표할 때 대인은 만원을 벌어 9000원을 쓴 후 1000원을 남기고, 소인은 1000원을 벌어 고스란히 천원을 갖는대요.” 주머니를 빠져나간 9000원이 훗날 새끼를 쳐서 돌아오므로 두 사람의 경제생활은 판이한 결과를 낳는다는 지적이다. 일상생활도 사고의 틀을 넓힐수록 풍요롭고 가치 있게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기억의 저장고에서 셈법의 몇 토막을 꺼내 음미해 본다.

한 남자가 낙타 17마리를 큰아들에겐 2분의 1, 둘째에겐 3분의 1, 막내에겐 9분의 1을 갖도록 유언하고 돌아갔다. 아무리 셈해봐도 답을 찾지 못해 고민하는 이들을 보고 지나가던 나스레딘이라는 성자가 간단히 풀어 주었다. 자신의 낙타 한 마리를 그들 낙타 속으로 밀어 넣고 셈을 하니, 세 아들에게 각각 9마리, 6마리, 2마리씩 분배할 수 있었던 것이다. 17마리를 가지고 문제를 풀었다. 종국에 남은 한 마리는 원래 자신의 것이라며 도로 갖고 떠났다지 않은가.

성경에 포도밭 주인이 일꾼에게 품삯을 주는 장면이 나온다. 아침 일찍부터 일한 사람에게나, 낮부터 또는 저무는 시간에 잠시 일한 사람에게나 똑같이 1데나리온씩 준다. 오늘날의 시각이라면 하루 일당을 1데나리온으로 약정했다 하더라도 불공평한 처사라고 분명 투덜거렸을 테다. 구원은 신앙생활의 길이가 아니라 마지막까지 믿음을 갖고 있느냐에 좌우하는 것임을 빗댐이다.

항아리로 물을 길어오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온전한 항아리와 오래되어 금이 간 항아리를 바꿔가며 사용했다. 깨진 항아리는 물이 새는 것을 미안하게 생각하며 주인에게 왜 버리지 않느냐고 물었다. 주인은 걸어온 산길을 뒤돌아보라고 말했다. 길가에는 예쁜 꽃들이 피어 있었다.

아프리카의 어느 조그만 마을에서는 범죄자가 거의 없다고 한다. 어쩌다 누가 죄를 저지르고 붙잡히면 벌하는 방법이 유별나다. 마을 광장의 중앙에 범인을 세워 놓고 온 마을 사람들이 빙 둘러서서 평소 그가 행했던 좋은 점을 한 가지씩 말해 준다. 자신이 행했던 따뜻한 말 한마디, 미소 한 조각도 이웃들이 소중히 간직하고 있음을 깨닫고 잘못을 깊이 뉘우친다고 한다.

무한한 우주에서는 어느 곳도 중심이 될 수 있다. 자신이 그 중심이라고 생각한다면 얼마나 경이로운 일인가. 그게 자신을 진실로 사랑해야 할 당위성이다. 그로부터 긍정의 사고는 뿌리를 사방으로 뻗으리라.

며칠 후면 추석이다. 고향을 떠난 많은 사람이 명절을 쇠러 설레는 걸음을 재촉할 것이다. 부모 형제를 만나 이야기꽃을 피우거나, 멀리 떠나간 얼굴을 회상하며 눈가를 적시거나 혹은 유년의 기억들을 헤집기도 할 것이다. 이럴 땐 사람 사는 게 별 게 아니라고 편안히 생각해도 좋을 듯하다. 만나 서로 체온을 느껴보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따스한가.

혹여 추석날 구름이 하늘을 가리더라도 마음으로 휘영청 둥근 달을 볼 수 있으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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