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과 남녀, 그리고 눈부처
남북과 남녀, 그리고 눈부처
  • 제주일보
  • 승인 2018.09.18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오대혁, 시인·문화평론가

실천과 지혜는 수레의 두 바퀴요, 자리이타(自利利他)는 새의 두 날개다.(원효, 「발심수행장」) 모래로 밥을 지으려는 어리석음은 실천과 지혜가 없음이다. 도달점은 명확한 듯하나, 노정을 찾기는 쉽지 않다. 특히나 남북문제나 성차별 문제가 한국사회를 들끓게 한다. 어떻게 풀어야 하나? 자리이타의 실천과 지혜가 있는 로드맵을 그려야 한다. 한 순간에 성공할 수 없는, 정말 지루하고 힘겨운 싸움들이다. 하지만 이 문제를 지혜로 풀고 실천하지 못한다면 우리의 평화와 행복은 없다.

남북문제와 관련해서는 백낙청의 「어떤 남북연합을 만들 것인가-촛불혁명 시대의 한반도」(『창작과 비평』2018 가을호)라는 글이 많은 지혜를 준다. ‘비핵화’만 강조해서는 비핵화를 이룩할 수 없으며, 낮은 단계의 남북연합이 있어야 한다고 한다. 당장 통일국가를 만들 수 없는 상황에서 남북연합은 한반도 평화의 안전장치가 되어 미국이 변심하여 침공하거나 적대정책으로 되돌아가는 것을 막을 것이며, 남북한 평화체제의 필수 요건이 될 것이라 한다. 그리고 통일을 배제한 평화 공존은 있을 수 없다고 본다. 통일 없이 평화를 말하는 것은 우리 헌법의 평화통일 조항이나 북측의 노동당규약과 건국이념을 부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북한으로 하여금 부강한 주변 국가에 둘려 싸여 자본주의의 경쟁을 감내하게 하고, 남한에서는 특권수호를 부르짖는 세력들로 하여금 색깔론을 들이대며 욕하고 자기개혁을 회피하는 상황을 연출케 하기 때문이다. 차분하게 검토하고 논의해야 한다.

여성 문제와 관련하여 강준만의 『오빠가 허락한 페미니즘』(2018)은 한국사회에서 벌어진 가부장제의 폭력과 그에 저항하는 페미니즘, 미투 운동 등의 전개 과정을 꼼꼼하게 정리하고 있어 살펴볼 만하다. 가부장제는 여성 억압의 원흉이며 그것을 깨부수는 일이 여성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남성을 위해서도 필요하다. 한국의 페미니즘은 메갈리아 덕분에 미디어의 주목을 받았지만 점차 대중의 염증과 반감을 키워 왔다. 그런데 그 상황을 방치해선 안 되고 프레임의 주도권을 미디어에 맡기지 말고 끈질기게 싸워 나가야 한다고 말한다.

갈등은 혐오와 배제의 논리로, 그렇다고 당위적 화해나 통합을 부르짖는다고 해결되지는 않는다. 저들을 파괴해야만 내가 행복하다는 생각은 혐오를 넘어 대재앙을 불러올 수 있다. ‘눈부처의 상생’을 떠올려 볼 일이다. 상대방의 눈동자 속에 비친 ‘나’를 ‘눈부처’라 하는데, 그 ‘눈부처’는 내 모습이라 ‘나’이기도 하고, ‘너’의 눈에 비쳤으니 ‘너’이기도 하다. “나와 타자 사이의 진정한 차이와 내 안의 타자를 찾아내고서 자신의 동일성을 버리고 타자 안에서 눈부처를 발견하고 내가 타자가 되는 것이 눈부처의 차이이자 상생이다.”(이도흠, 「마음의 깨달음과 정치 참여의 화쟁」, 2010.)라는 화쟁의 논리를 생각해야 한다.

남과 북, 남성과 여성이 가져왔던 갈등과 불화를 ‘나는 나, 너는 너’라는 상호배제의 논리로는 끝장낼 수 없다. 공감과 연대, 그리고 지혜와 실천을 통해서만 제대로 굴러가는 수레가 되고 새가 될 수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