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
내 이름
  • 제주신보
  • 승인 2018.10.04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박철희 수필가

올 여름은 내 태어나 처음 겪어보는 극심한 더위인 것 같다. 더위에 꼼짝 못하고 선풍기만 틀어놓고 집에만 있었다. 더위가 가나 했더니 이번에는 태풍 솔루가 강타했다. 애들은 위험하다며 나가지 말고 집에만 있으란다. 젊을 때야 태풍 불어도 볼 일 보러 나갔지만, 나이가 들어갈수록 매사에 자신 없어지고 움직이는 데 점점 게을러진다.

태풍이 아니어도 길을 걷다가 갑자기 바람이 세게 불면 가로수나 주차된 차를 지지대로 몸을 의지한다. 특히 바람 많은 제주에서 자주 겪는 일이다.

내 별칭은 ‘코스모스’다. 내 이름 ‘박철희’와는 어울리지 않는다. 이름만 들으면 아주 강해 보이지만 내 몸은 너무 야위고 늘 힘이 없어 사람들이 나를 보면 모두 하늘하늘 코스모스 같다고 한다.

나는 몸이 약해 사십대 초반에 혼절 한 적도 있었다. 찬바람을 조금이라도 맞으면 여름, 겨울 할 것 없이 감기를 달고 있다. 한의원을 가면 늘 맥이 안 나와서 애를 먹고 일 년에 보약도 여러 재 먹는다. 허리가 아파 시술했는데도 요즘은 더욱 허리도 굽어진다. 그나마 큰 병 없이 지내는 것이 다행 중 다행이다.

나는 일본에서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입학한 첫날 사람들의 시선이 내 명찰로 쏠리며 귀엣말을 하고 있었다. 어린 나이라도 느낌이 좋지 않았다. 일본 사람은 박(朴)씨 성이 없다는 것과 이름에 쇠 철(鐵)자를 쓰지 않는다는 것을 뒤에 알았다. 아버지께서 늘 우리 자매에게 교육시키셨다. ‘조선사람 이라는 것을 잊지 말라’ 하고 긍지를 각인시켜주셨다.

우리는 광복의 기쁨을 안고 한국으로 왔다. 한국에 와서 초등학교에 들어가니 남자 애들이 ‘철기야, 철기야’놀려 자주 울었다. 철기는 잠자리의 사투리다. 겨울에 빨간 토끼털 코트를 입고 학교에 가면 아이들은 나를 보고 ‘아까 톰보’(빨간 잠자리)라고 일본말로도 놀렸다. 잠자리라 놀림 당하는 것도 싫고 남자 이름 같아 더욱 내 이름이 싫었다. 예쁜 이름도 흔하디 흔한데, 많은 이름 중에 하필이면 남자 이름이라니. 아버지를 원망도 많이 했다. 누가 니 이름이 뭐냐 물으면 나는 이름을 선뜻 답하지 않았다.

요즘이야 이름을 바꿔 개명신고만 하면 되고, 아버지 어머니의 성을 함께 넣어 성까지 바꿀 수 있는 세상이지만 우리 때는 이름을 바꾼다는 건 꿈도 못 꿀 일이었다.

그런데도 나는 내 이름이 어찌나 싫던지 좀 커서는 내 마음대로 ‘경희’라고 이름을 지었다. 나 스스로 나를 존중하고 싶고, 여자다운 이름을 쓰고 싶어 벼슬 경(卿)자와 계집 희(姬)자를 썼다. ‘경희’라는 이름을 짓고 나니 뿌듯했다. 누구에게나 당당하게 내 이름을 ‘경희’로 알려주어 사용했다. 우리 딸과 아들조차도 어릴 때까지 내 이름이 ‘박경희’인 줄 알았다.

그런데 살다보니 서류를 내야 할 일도 생기고, 병원을 가도 본 이름을 말해야 되고, 신분증을 내어야 비행기도 타는 세상이 되었다. 이때부터 내 이름 ‘박철희’를 다시 사용하게 되었다.

우리 언니와 나는 날마다 아침 여섯시 반이면 전화를 한다. 서로 목소리로 건강을 점검한다. 여든넷인 언니는 여든 된 동생이 늘 걱정이다. 전화 할 때마다 하는 말이다.

“아버지가 네 이름 강하게 지어 주셔서 오늘날까지 잘 견디고 있다.”

그러고 보니 부인할 수 없다. 내가 생각해도 쓰러질듯 쓰러질듯하면서도 잘 버티고 있음은 강한 이름 덕이리라. 지금 사람들은 오히려 내 이름 ‘철희’가 좋다고 한다. 남자 같은 내 이름이 싫어 뒤로 숨겼던 이름을 늦었지만 이제라도 우려우려 진국이 되도록 앞세울 것이다. 온갖 힘들었던 시간에도 쓰러지지 않고 잘 이겨내 온 것은 이름 덕임을 이제야 깨달았다.

이제 이 ‘박철희’이름으로 평생교육원 등록도 하고, 글도 쓰고, 시집도 내고 수많은 일을 한다.

“아버지, 늦었지만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