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파스 동티모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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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운(BHA국제학교 이사, 시인/수필가)

“아! 이 선생님, 언제 귀국하셨어요?”

“안녕하세요, 선생님. 지난 달 돌아왔습니다.”

“동티모르에는 얼마나 계셨나요?”

“눈 깜박할 사이에 일 년이 지나갔네요.”

뒤 돌아보니 세월은 참으로 빠르게 흘러갔다. 힘든 시절과 어려운 상황들이 너무도 많았는데도, 용케 견디고 참고 적응하면서 임기를 마칠 수 있었다.

동티모르에서 송별식이 눈에 선하다. 두세 달 동안 마무리 준비를 했다. 우선 종합 보고서를 완성해야 했다. 400쪽 가까운 보고서를 만들었다. 테툼어, 영어, 한국어로 작성했다. 실린 내용은 학교 발전 전략과 비전, 교원 역량 강화, 기술고등학교 학과별 교육과정, 진로 및 경력 개발, 학교 경영, 교수 학습 방법, 학생 생활지도, 시설 및 기자재 유지 관리, 학교 기업 육성, 특성화 교육 등 방대하고 다양한 내용들이다. 그리고 한 해 동안 학교 경영을 자문해 오면서 느끼고 개선해야 할 사항 큰 줄기 열다섯 개 등이다.

보고서 발간에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한국에서라면 열흘 남짓하면 될 것을 이곳에서는 코이카 인쇄소에서 발간하는데, 교육부장관의 결재와 또 인쇄 지시 공문이 있어야 하고 종이, 잉크, 인쇄 재료를 공장에 사다가 제공해야 되기 때문에 이 절차가 석 달이 소요되었다.

프란치스코 교장 선생님과 드와르테 교감 선생님은 미리부터 먹을 것 마실 것 등 많은 송별식 준비를 할 계획이라고 했다. 나는 조금도 준비하지 말라고 부탁했다. 모든 것을 제가 준비하겠다고 했다. 나는 이곳에서 가장 큰 끄마넥 문구점에 가서 수첩, 볼펜 등 세미나용 필기구 구입과 활동 사진을 인화하고, 리따 슈퍼에 가서 야자 음료수, 비스켓 등을 충분히 구입했다. 식사를 준비하려고 했으나 워낙 날씨가 더운 곳이라 먹고 탈이 나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었다.

아침에 컨퍼런스 룸에 가보니 회의 준비가 모두 되어 있었다. 필기구, 마실 것 등과 인쇄 자료에 일일이 이름을 적고 배부했다. 한 시간 동안의 프레젠테이션을 모두가 열심히 듣고 메모한다. 다들 놀라워한다. 일 년 동안 이 많은 일을 혼자 다해냈기 때문이다.

이어 송별식이 이어졌다. 나는 내용을 이곳 언어인 테툼어로 작성하여 몇 차례 연습을 해두었다. 조금 길게 했다. 포르투갈의 영향을 받은 이곳 사람들은 연설을 아주 길게 하는데, 나도 오늘만은 조금 영향을 받고 싶었다. 일부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이 곳에 부임한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1년이 다 되었습니다. 그 사이에 만났던 백여 분의 선생님들, 친절한 학생들, 따뜻한 관심을 가져준 주민과 가톨릭 신자들의 모습이 눈에 아른거립니다.

이번 주는 학기말 방학입니다. 그러나 저는 오늘도 아무도 없는 학교에 홀로 출근하여 근무하고 있습니다. 저는 항상 5시경에 일어나서 6시쯤에 집을 나섭니다. 버스를 타고 6시 30분에 시작되는 베코라 성당의 아침 미사를 보고 20 분 정도 걸어서 학교에 도착합니다. 언제나 내가 첫 출근이고 학생들도 보이지 않지만 나지막한 산기슭에 자리잡은 노란색 교사들 너머로 아침 안개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모습을 보면, 가슴엔 우리 학생들에 대한 기대가 가득차고, 나날이 성장해 가는 우리 학교의 미래를 보는 것 같아 가슴 뜨러워짐을 느끼게 됩니다. 학교 안에서 만나는 학생들마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하고 인사하는 모습을 보면 이곳이 한국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또 교문을 나서면 다른 학교 학생들과 주민들마저 우리말로 인사를 건네니, 동티모르의 코리아 타운이라는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교장 선생님의 길고 긴 답사에 이어 대형 케익 절단과 전통가옥 모형인 ‘화따루꾸’ 선물이 있었다. 시원함과 섭섭함이 많이 교차했던 순간이었다.

내가 아주 작은 흔적을 남긴, 21세기 최초의 신생 독립국이며 동쪽에서 해가 떠오르는 나라, 카파스(아름다운) 동티모르, 나는 오늘도 이 작은 나라가 영원히 빛나기를 합장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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