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초위왕(走肖爲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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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성중 논설위원

정암 조광조는 김굉필, 정여창, 이언적과 더불어 ‘동방사현(東方四賢)’으로 불린다. 조선 중종 때의 성리학자다. 그런 그가 죽음을 맞은 건 반대파가 조작한 ‘가짜뉴스’ 때문이었다. 고작 38세 때 일이다.

정적들은 뽕나무 잎에 꿀을 발라 ‘주초위왕(走肖爲王)’이라는 글자가 나오도록 벌레가 파먹게하는 술수를 썼다고 고사는 전한다. 주초는 조(趙)의 파자다. 조씨가 왕이 된다는 뜻이다. 조광조가 왕이 될 역모를 꾸민다는 증거로 이 잎을 중종에게 보였다는 것이다.

역모 누명사건의 대표적인 예로 사림 선비들이 억울하게 죽은 기묘사화의 발단이다. 마침내 그는 유배지 능주에서 절명시를 남긴 채 사약을 받았다. 반대파를 제거하기 위해 여론까지 조작해 왕까지 움직인 사례다.

▲엉터리 정보를 담은 가짜뉴스의 습격은 진실과 거짓의 경계를 허문다. 그런 피해를 입은 사례 중 하나가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이다. 2016년 말 임기를 마치고 귀국하면서 대선 출마 선언을 했지만 그가 정치를 포기하는 데는 딱 두 달밖에 안 걸렸다.

상대 후보 측의 견제와 압박도 컸지만 핵심은 ‘퇴주잔 논란’을 야기시킨 가짜뉴스가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부친 묘소를 참배한 뒤 퇴주잔을 묘소에 뿌리지 않고 본인이 마셨다는 13초짜리 조작된 가짜영상이 나돌아다닌 것이다. 반 후보는 당시 ‘인격 살인’이라는 격한 반응을 보이며 실체를 밝혔지만 대세를 돌리기엔 역부족이었다.

그전에도 천안함과 미국 잠수함 충돌설, 세월호 폭침설, 광우병 루머 등 악의적인 가짜뉴스로 국론을 분열시킨 사례가 잇따랐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근래 서울교통공사 ‘고용세습’ 의혹을 둘러싸고 여야간 정치 공세가 심각해 국민들만 어지럽다. 무엇이 거짓이고 참인지조차 헷갈릴 정도다.

급기야 한국당과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 등 야 3당은 국정조사를 요구하고 있고, 민주당은 침소봉대니 적반하장이니 공세를 펴며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카더라 식의 루머든 정확한 팩트든 간에 맹목적인 반박이나 주장은 누워서 침 뱉기나 다름없다. 게다가 가짜뉴스 여부를 판단하고 바로잡으려면 지난한 과정이 이어질 수밖에 없다. 이 사안도 구성원끼리 숙의하고 대타협을 이끌어 내야 하는 이슈다. 보수와 진보, 여야를 뛰어넘어 국민의 눈으로 봐야한다는 말이다. 그리고 공론의 자정기능에도 신뢰가 쌓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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