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사범과 법감정
경제사범과 법감정
  • 정흥남
  • 승인 2003.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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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의 이익만을 위해 감귤 원산지를 허위 표시, 폭리를 취한 행위는 제주의 생명산업인 감귤농업에 치명적 손해를 초래한 점에서 엄하게 처벌돼야 마땅하다.”(A피고인)

“건전한 노동을 제공하지 않고 시민들의 사행심을 교묘하게 이용, 거액의 이익을 챙긴 행위 또한 이에 따른 엄중한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B 피고인)

이는 최근 감귤 원산지 허위 표시 혐의로 구속기소된 피고인(A)과 전자경마오락 영업으로 재판을 받은 피고인(B) 2명에 대한 1심 선고 때 양형 사유의 일부다. 재판 결과 이들은 모두 형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전과가 없는 초범이라는 점과 30~40일의 구금기간 반성했다는 점이 표면상 이들에 대한 형 집행유예 사유다. 그러나 이 사건을 맡았던 재판부가 무시할 수 없었던 것은 동일 범죄를 저지르고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던 유사 사범들과의 형평성 문제였다.

이들 사건을 심리했던 판사는 재판 후 “유사 피고인들 간 형평성과 일반 시민들의 법감정 사이에서 많은 고민을 했다”고 솔직히 털어놨다.

법 앞의 평등을 원칙으로 재판을 하는 판사의 입장에선 유사 피고인들 간 ‘양형 편차 최소화’가 당연하고 또 이 같은 현상은 형사재판의 기본원칙으로 자리잡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원칙에도 ‘경제사범’들에 대한 형량은 시민들의 법감정과 적잖은 거리감이 있어 보인다.

일반 형사사건의 경우 피해자가 상대적으로 소수에 그치는 반면 경제사범의 경우 피해자가 불특정 다수로 번지기 일쑤다.

특히 경제사범들은 사회의 신용질서를 고스란히 파괴시키는가 하면 시민들간 불신을 증폭시켜 이웃간 인정을 교란시키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IMF(국제통화기금) 관리체제 이후 제주지역 역시 급격한 경제난을 겪으면서 사기사건들이 속출해 그 영향으로 ‘보증기피증’이 보편화됐다.

금융기관 대출은 물론 새로운 업체에 취직 등 정작 보증인이 필요할 때 보증인을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는 경우들이 종종 목격된다.

제주지방경찰청이 잠정 집계한 자료에 따르면 제주지역에서 발생한 사기.횡령.배임 등 경제사범은 해마다 증가세를 보이면서 연간 1만건에 육박하고 있다.

최근에는 유사 홈쇼핑 등 불법통신판매행위에서부터 ‘떴다방’ 등 부동산 질서교란 행위, 신용카드 할인행위, 다단계 금융피라미드, 채권 회수를 위한 청부폭력행위, 허위.과대광고를 통한 건강보조식품 제조.판매행위 등 이른바 ‘신종 경제사범’들도 기승을 부리고 있다.

시대가 흐를수록 과거 순수 형사사범들이 차지했던 공간을 경제사범들이 파고들고 있고 이들에 대한 강경한 처벌을 기대하는 시민들의 법감정 역시 더욱 거세지고 있다.

뇌물 받고 처벌받은 고위층 인사들이나 대형 경제사건에 연루돼 처벌받았던 사람이 슬그머니 사회에 복귀해 보란 듯이 생활하는 것을 보고 일반 서민들은 재차 ‘돈 없고 백 없는 신세’를 한탄한다.

경제사범들에 대한 양형 편차를 최소화하고 시민들의 법감정까지 아우를 수 있는 탄력적인 법 집행이 재삼 절실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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