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비밀
가을의 비밀
  • 제주신보
  • 승인 2018.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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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희창. 신학박사/서초교회 목사

심리 상담에 대한 외국인 학자의 강연에 참석한 적이 있었다. 평소 스트레스가 많아서인지 심리상담에 대한 강연을 듣고 싶었다.

남모르는 비밀 때문에 지나친 두려움이 생기는 경우가 있다고 했다. 지나친 두려움이 마음을 장악하게 되면 정신적인 문제가 생기게 된다고 했다. 상담을 통하여 그런 문제를 해결하려면 비밀을 털어놓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했다. 비밀을 털어놓은 순간 두려움은 깨트려지기 시작하는 것이요 해결의 실마리가 풀려가게 된다고 했다.

일반 대중을 상대로 강연준비를 해서인지 특별히 새로울 것은 없었다. 상담 내용에 대해서는 철저히 비밀을 지켜야 한다는 이야기까지 별로 특별할 것은 없었다.

비밀이라는 이야기를 반복하여 듣는 동안에 어린 시절 나만의 비밀이 새삼스럽게 되살아났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어떤 참고서를 훔쳤던 기억이 되살아나서 곤혹스러웠던 시간이 있었다. 정신적인 위로를 얻으려 했는데 잊었던 비밀이 되살아나서 스트레스만 더한 듯했다. 그래서 나도 비밀 한 가지를 말하려고 한다. 누군가에게는 위로가 되고 누군가에게는 스트레스가 될 수도 있는 비밀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다.

어느 텔레비전에서 이런 방송이 나온 적이 있었다. 노인 부부가 나오는 퀴즈 프로그램인데, 사회자가 할아버지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 사이 관계를 뭐라고 합니까?” 사회자는 천생연분이라는 대답이 나오기를 기대하고 있었다. 그런데 할아버지는 전혀 다른 대답을 했다. 평소 할머니로부터 들어온 대답을 서슴없이 전달한 것이다. 할아버지는 ‘웬수’라고 대답했다. 의외의 대답 때문에 모두 한참을 웃었는데, 분위기를 수습하면서 사회자가 다시 이렇게 질문했다. “두 글자 말고 네 글자로…” 네 글자라면 당연히 ‘천생연분’이라는 대답이 나오리라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할아버지는 당당하게 ‘평생웬수’라고 대답했다. 결국 그 문제는 못 맞춘 것으로 처리되었다.

그런데 잘 생각해보면 천생연분이나 평생원수나 모두 정답이 되어야 한다. 천생연분이라야 하는데 평생원수로 살아가는 것이 할아버지와 할머니 사이 관계만이 아니라 이 세상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의 관계라는 의미이다. 천생연분의 관계만이 평생원수의 관계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를 가장 어렵게 만드는 사람은 가장 가까이 지내던 사랑했던 사람이다. 아내에게 가장 소중한 남편이 아내를 가장 어렵게 만들면서 살아간다. 남편이 가장 사랑하는 아내가 남편을 가장 어렵게 만들면서 살아간다. 가까운 관계가 아니라면 서로에게 고통이 될 수도 없다. 사랑하기 때문에 고통을 줄 수 있는 것이다.

남편으로서 아내로서의 사명을 먼저 생각한다면 그들 사이 관계는 천생연분이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이기적인 권리와 권력을 앞세운다면 그들의 관계는 평생원수가 되고 말 것이다. 공동의 관계를 먼저 생각한다면 건강한 사회가 되어 갈 텐데…. 개인과 인권이 지나치게 강조되면 평생원수들이 서로 노려보는 세상을 만들어가게 될 것이다.

감추어져서 비밀이 아니라 못 본 척하기 때문에 비밀이 되는 그런 이야기이다. 그래서 자연적인 기후보다 사회적인 기후가 더 싸늘하게 느껴지는 것이 요즘의 우리가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