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눈앞이다
겨울이 눈앞이다
  • 제주신보
  • 승인 2018.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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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웅. 칼럼니스트

산그늘 내려 음산한 숲으로 날 세운 바람이 지난다. 우수수 떡갈나무 고엽이 가지에 매달린 채 마른 소리를 내고, 그 소리 우우우 산울림으로 온 산을 깨운다. 단풍으로 화려하게 꽃 치장하고 있는 가을 산의 뒤태가 아직은 곱디고운 11월.

서리는 내려도 한낮은 그리 춥지 않아, 가을의 여린 볕에 등 따습다. 하지만 좋은 계절인데도 가을은 길지 않아 늘 아쉽다. 단풍이 화려해 짧게 느껴지는지도 모른다. 아마 그럴 테다. 아름다운 것은 우리 곁에 오래 머무르지 않으니, 단풍이라고 예외이랴.

산을 뒤흔들어 깨운 바람이 들판을 지나 거침없이 사람의 세상으로 몰려온다. 늦가을 바람 소리는 계절의 전초로 긴장을 부른다. 길바닥에 납작 엎딘 풀들이 바삭바삭 조바심치기 시작할 즈음, 먼 데서 한달음에 와 있는 겨울, 언제나 성급히 찢고 부딪고 갉아내는 건조한 소리, 파찰음이다. 머지않아 매몰찬 하늬바람이 점령군처럼 떼 지어 와 장악하리라.

오래전부터 11월은 가을이 아닌, 이미 겨울이다. 가을은 겨울로 가는 계절의 징검다리였는데, 요즘은 그 경계가 모호해졌다. 가을에 어깃장 놓아 눈치 없이 샛길로 와 있곤 하는 겨울. 달력엔 가을로 걸어 놓고 추위에 몸을 떠는 사람들. 고뿔 걸릴라 평상복에다 두터운 덧옷을 걸치고 있다.

겨울엔 몸이 따스워야 한다. 서민이 제일 바라는 바다. 난방부터 살피게 된다. 보일러가 고장이 나 고생 고생했던 지난겨울이 문득 떠오른다. 혹한에 기계가 돌아가다 서 버려 얼마나 곤혹스러웠는지 모른다. 설비기사에게 간곡히 부탁했지만 손 볼 집이 줄을 섰단다. 아침에 전화로 통사정했는데 집에 온 것은 뒷날 밤 이슥한 시간이었다. 겨울 한밤중에 동태가 다 됐다.

어릴 적 미적지근한 구들방에서 얇은 이불 하나에 너덧 식구가 발막아 자던 기억이 새로웠다. 눈이 펑펑 쏟아지고 문풍지를 울리던 하늬가 기세를 올리던 한겨울, 긴 밤을 어떻게 났을까. 지난 일을 까맣게 잊고 투덜대며 살게 간사한 게 사람인가 보다.

시월 중순께, 갑자기 몰아닥친 찬바람 소리에 기겁해 보일러의 단추를 눌러 봤다. 으르렁 드르렁 돌아가는 숨소리가 제법 힘차다. 다행히 올겨울은 문제가 없을 듯하다. 그때 집에 왔던 보일러 기사, 눈빛이 퍽 선량해 보이더니 정성껏 손봤던 모양이다. 잘해 주기만을 바랄 뿐 기계를 알 턱이 없는 게 수용가다. 긍정의 눈을 거두지 말아야지, 고마운 사람들도 적잖은 세상이다. 먹고 입는 다반사야 당한 대로 하면 그만이나, 추위에 떠는 건 그야말로 궁상 아닌가. 그나마 됐다 싶어 가슴을 쓸어내린다.

뜻밖에 겨울 텃밭이 푸르다. 가까이 사는 문우가 상추와 배추 모종을 가져다 손수 심어 줬지 않은가. 복합비료까지 뿌려 줬으니 푸성귀가 제 세상 만났다고 우쭉우쭉 큰다. 상추는 벌써 밥상에 올랐다. 뜯을수록 잘 자라니 육(肉) 보시하려 세상에 태어난 나물이다. 쑥쑥 자라고 있는 월동배추는 눈 내릴 때를 기다리리라. 쌈을 좋아해 녀석 앞에 서면 군침이 설설 끓는 판이다.

나기 힘든 겨울이 눈앞이다. 하지만 이만하면 겨울이라고 몸 사릴 일이 별반 없을 듯하다. 나이 드는 형편에 몸이나 잘 감싸 병치레에서 비켜갈 수 있으면 된다. 글 몇 줄 쓰면 즐거우니 이에 뭘 더 바라랴. 겨울의 초입이라. 하루해가 갈수록 짧은 요즈음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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