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올레의 리더십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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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정옥, 서귀포의미래를생각하는시민모임 공동대표/논설위원

11월의 달력을, 서귀포는 올레걷기로 시작하였다. 축제가 열리는 하효항은 ‘역대급 최고의 날씨’라는 올레 이사장의 환호에,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는 참가자들의 엄지 척으로 만항의 흥분이 출렁거렸다. 눈부신 햇살 사이로 바다가 금빛을 쏟아놓자 기름 잔 같은 수면위로 미끄러지던 새들은, ‘잘못된 길은 없다’는 축제의 테마를 박차며 공활한 가을하늘 위로 가없이 날아올랐다.

바다 새처럼 자유로운 사람들이 무리 지으며 축제의 여정에 들어서자, 올레의 지킴이들이 안내를 하고, 쓰레기를 줍고, 사진을 찍어 준다. 그저 올레를 사랑하기에 자원해서 달려 나온 봉사자들의 헌신이다. 보목 포구에 이르자 바람의 소리를 내는 오카리나 앙상블이 추억의 노래를 흥겹게 연주한다. 올레의 열성팬들이 의기투합해서 결성한 합주단의 재능기부. 검정 교복에 갈래 머리를 한 여고생들은 중년을 넘긴 어머니들이 대다수다. 하기에, 노래가 더 반갑고 신나는 올레꾼들. 연주에 맞춰서 가사를 따라하는 사이, 올레는 어느새 음악교실로 변신한다. 먼저 온 이들이 떠나면 나중 온 이들이 남아서 채워지는 빈자리들. 올레의 음악시간은 그렇게 이어진다.

걷다가 지치면 동네 할망들이 운영하는 쉼터에서 떡이나 음료수를 사먹는 사람들. 순다리가 제주역사의 히트상품이 되었다. 그렇게 ‘놀멍 쉬멍 걸으멍’ 구두미 포구에 이르자, 어린이 풍물패가 길트기로 마중한다. 이중섭 화백이 그려서 걸작이 된 ‘섶섬이 보이는 풍경’ 앞에서, 아이들은 공연을 하니 좋고, 어른들은 구경을 해서 좋다.

드디어 점심시간. 하수처리장 잔디광장에서 펼쳐진 보목동 부녀회의 야외 식당에는 전복톳밥이 축제의 메뉴로 자랑스레 내걸렸다. 보목동은 특산물 판매로 마을소득을 올리고, 올레꾼들은 저렴한 가격으로 특식을 즐긴다. 수백 명이 모여 앉아 같은 밥상에서 담소하는 소풍, 한 가족처럼 정겨운 잔디밭 위로 가을 햇볕이 따사롭다. 앗불싸, 졸음이 내려앉는 순간, 시원스런 색소폰 연주와 경쾌한 알로하 춤이 신바람을 일으켜준다. 다시 일어서서 길 위를 걸어가는 발걸음들이 가벼웁다.

이렇게 이어지는 올레걷기에는 3일간의 축제 동안 1만 여명이 참가했다. 길은 또 다른 길로 이어지므로 육지사람과 해외동포, 외국인들까지 모여들었다. 오랫동안 막혔던 KAL호텔의 올레가 뚫리고, 소정방폭포에서는 스페인의 까미노 테너가 산티아고를 열창했다. 2007년 가을에 1코스를 개장한 지 12년 만에, 제주올레는 스페인에서도 찾아오는 세계인의 길이 되었다. 김종두 시인의 제주여인1에서, 시집가는 딸의 손을 붙잡고서, ‘아명허믄 못사느냐. 졸름 붙이지 마랑 탕근도 졸곡 물질도 허멍 시집 어른 뜻받앙 살암시믄 살아진다(아무려면 못살겠느냐. 엉덩이 붙이지 말고, 탕근도 잣고, 물질도 하면서, 시집 어른 뜻 받들어 살다보면 살아진다)’던 어머니의 골목길이 말이다.

이쯤에서 제주 올레의 성공 비결이 무엇일까를 생각해 본다. 가슴 저린 자연과 함께 세트 플레이로 떠오르는 건, ‘올레 축제에서 내가 맡은 책임은 날씨뿐이거든요’라며 리더십을 무안케 하는 서명숙 이사장. 그리고 그녀와 함께 꼬닥꼬닥 올레를 열어가는 리더십 있는 제주여자들.

이 여자들을 제주 사회의 곳곳에다 소통의 리더로 세워주면 어떨까? 제주도의 삼다(三多)정신이란 여자들의 숫자가 아니라 돌과 바람도 부둥켜안는 어머니의 마음이기에. 제주는 여전히 여자의 섬이라 가슴 설레는 세계인의 유산, 자랑스러운 보물덩이가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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