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키호테, 잃어버린 고향을 찾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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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대혁, 시인·문화평론가

제주 출신 배우인 양승한(48세)이 「너, 돈끼호떼」(양승한, 김나연 각색)라는 연극을 대학로에서 공연했다. 2014년부터 시작된 연극은 2018년 11월까지 계속되고 있다. 구부정한 늙은이가 꼿꼿하게 허리를 펴면서 ‘돈끼호떼’가 되고 ‘싼초’가 되어 풍차를 향해 질주하는 400년 전 이야기를 현실로 가져오는 연극. 주변에서 거들어주는 2인의 악사를 빼고 양승한 혼자서 걸쭉한 입담과 마임, 성대모사, 아크로바틱 댄스로 가득채운 환상적인 무대는 가히 일품이다. 두 시간 가까운 시간에 그 많은 대사와 무용에 가까운 동작들을 리드미컬하게 연출해내는 모노드라마를 보며 경탄하지 않을 이 없다.

연극에 대한 열망 하나로 서른이 넘어서야 발을 디딘 대학로였다고 했다. 처음 시작한 영화 조감독으로 있다가 뛰쳐나와서 산속에서 숨어 지내다 청둥오리의 눈에서 바닷가에서 연극 하고 있는 자신의 미래를 보았다고 했다. 뜻이 맞는 친구들과 한마음으로 연출하는 연극처럼 멋진 예술은 없다고 생각했다. 연극판을 기웃거리며 해외에서도 4년 정도 돌아다니고 다시 대학로에서 뼈를 묻겠다며 만들어낸 「너, 돈끼호떼」가 사람들의 큰 환호를 얻고 있단다. 누군가는 연극을 다른 장르로 나아가기 위한 발판으로나 여기지만 그는 모든 생을 쏟아 부어도 부족한 세계가 연극이라며, 연극 없이 살 수 없는 삶을 담담히 이야기했다.

우리에게 ‘돈키호테’는 현실을 무시하고 공상에 빠져서는 자기 나름대로 어떤 정의감에 사로잡혀 분별없이 행동하는 사람이다. 그렇지만 원작자 세르반테스, 그리고 연극인 양승한에게 돈키호테는 그런 부정적 인물이 아니다.

세르반테스는 『돈키호테』를 쓴 이유를 “기사 이야기가 속세에서 갖는 권세와 인기를 몰아내기 위해서.”라고 밝혔다. 게오르그 루카치(Georg Lukacs)의 표현처럼 “바야흐로 기독교적 신이 세계를 떠나려던 시대”, “인간이 고독해지고 어디에서도 고향을 갖지 못하던 시대”를 배경으로 탄생한 작품이 『돈키호테』였다.(『소설의 이론』) 그런 와중에서도 돈키호테는 신들린 상태, 즉 보다 높은 정신적 경지를 지향하는 존재로 그려진다. 삶에 미침으로써 정신적으로 고양되고 그럼으로써 시공간을 초월한 영원성을 획득하는 존재가 돈키호테다. 지향점을 상실한 듯 보이는 때에도 미친 듯이 무언가를 열정적으로 이루어내는 삶을 돈키호테에게서 보는 것이다.

양승한은 직접 쓴 대본을 공연할 때마다 다양한 버전(version)으로 변화시켜 왔다. 이전 권위주의 정권이 국정을 그르칠 때에는 관객들에게 ‘사자와의 대결’을 강조하면서 ‘쫄지 말라’는 메시지를 드러냈다면, 이제는 갑옷을 벗자 갑자기 늙어버리는 돈키호테의 모습을 통해 갈 곳을 잃고 열정을 잃어가는 존재들의 등을 토닥거린다. 연극 말미에 무대 중앙에 선 돈키호테 양승한은 이렇게 노래한다. “온 세상이 비웃고 조롱하고 외면해도 / 저 하늘이 시키고 이 운명이 명하고 / 내 이성이 청하고 내 의지가 원하노니 // 험한 길을 헤치며 쓰러져도 일어나 / 닿을 수도 없는 저 높은 곳을 향하여 / 전진 또 전진하여 가리니.”

혼란한 세상에서 정의를 사랑하는 선인, 타인을 돕고자 하는 이상을 바탕으로 선선히 나아가는 돈키호테의 열정을 떠올리며 쌍그런 겨울을 맞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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