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머리를 허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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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민, ㈜탐나커피 상무이사/논설위원

아들은 초등학교 6학년 때 바가지를 뒤집어 씌어놓은 듯한 머리를 노랗게 염색했다. 다른집 아이들이 이런저런 색깔로 머리카락을 물들일 땐 그저 ‘별로다’라고 생각했는데, 내 아들이 하니 귀여워 보였다. 다만 그 머리를 만드는 데 드는 돈이 좀 아까웠을 뿐이다.

중학교에 올라가니 두발과 복장에 관한 까다로운 규칙이 있었다. 아들은 머리카락을 다시 검은색으로 돌려놓을 수밖에 없었다. 유아였을 때부터 유지해온 바가지 모양의 헤어스타일도 벌점 대상 이었다. 결국 아들은 동급생들과 마찬가지로 ‘대한민국 표준 남중생’의 머리모양을 가지게 되었다.

미용실에 가져다주는 염색 비용을 아낄 수 있어 좋기는 했지만 ‘다름’을 허용하지 않는 획일성에 대한 의문과 아쉬움이 더 컸다. 필자가 중학교를 다니던 30여 년 전에 비해 세상은 많이 변했는데 학교는 그만큼 많이 변하지는 못했구나 하는 생각도 했다.

얼마 전 서울시 교육청이 2019년부터 중등학생의 두발 자율화를 추진한다는 뉴스를 보았다. 파마와 염색 등 두발 형태까지 자율화 한다는 계획이다. 아들의 염색 머리가 다시 떠올랐다. 그래! 머리카락이 무슨 죄란 말인가? 갑돌이의 노란 머리가 갑순이의 파마머리가 도대체 타인에게, 이 사회에 무슨 해악을 끼친다는 말인가? 두발자율화로 학생들의 창의력이 갑자기 뿜뿜 솟아나지는 않겠지만,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다면 개인의 자율성과 다양성을 최대한 존중해줘야 하는 것이 아닌가 말이다.

그에 못지 않게 우려스러운 것이 녹지병원을 둘러싼 논란이다. 녹지병원 하나를 허용하면 ‘영리병원’이 마치 봇물처럼 터져나와 기존의 병원들을 밀어내고 공공의료시스템을 붕괴시킨다는 논리는 마치 필자 아들의 노란 머리 하나가 수많은 학생들의 머리를 물들여 결국 불량 청소년을 양산한다는 논리 만큼이나 터무니 없다.

서귀포 영어교육도시에 들어선 국제학교들은 어떤가? 수업료가 연간 수천만 원씩이나 되는 ‘귀족학교’가 들어서면서 제주도의 공공교육시스템이 얼마나 무너져 내렸는가? 제주도에서 오히려 초중고 친환경 무상급식, 고등학교 무상교육 등 교육의 공공성을 강화하는 정책들이 타 지자체들보다 먼저 시행되고 있지 않은가? 국제학교든 국제병원이든 기존 질서를 크게 흔들지 않는 범위에서 수요자의 요구와 능력에 맞게 운영토록 하고, 그로 인해 얻을 수 있는 자원을 교육의 공공성, 의료 공공성을 강화할 수 있는 정책에 활용하면 된다.

지난 10월 초 숙의형 공론조사위원회가 ‘녹지국제병원 개설 불허’를 제주도에 권고하였다. 필자도 사건의 추이를 다소간 지켜본 바, 도민으로부터 위임받은 본인의 책무와 권한임에도 불구하고, 애초에 병원개설 여부를 공론조사에 넘긴 도지사의 고뇌를 전혀 이해못할 바는 아니다. 다만 최종 결정이 가져올 파급을 있는 그대로 검토하고 숙고해야할 것이다. 녹지국제병원 하나가 들불처럼 번져 정말로 대한민국의 공공의료시스템을 말아먹을지(심지어 현정부의 보건복지부도 승인했는데!), 그리고 투자자는 1000억원대의 손해배상소송을, 토지 소유주는 토지반환소송을 준비중이라는데, 그 비용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지까지 말이다.

사족(蛇足)-‘영리병원’이라는 말은 여전히 어렵다. 녹지병원만이 영리병원이라면, 우리나라의 모든 병원은 다 비영리병원인가? 개인의 경제적 이득, 영리에는 전혀 무관한 슈바이처 박사들만이 병원에서 우리들을 맞이하고 있다는 말인가? 영리병원이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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