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중산간 마을에 몰아친 피바람…아이들도 총살 지켜봐
(20)중산간 마을에 몰아친 피바람…아이들도 총살 지켜봐
  • 홍의석 기자
  • 승인 2018.12.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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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쑥대밭이 된 원동마을
나그네 쉬어가던 평화로운 마을
토벌대 들이닥쳐 주민 단체 학살
마을 폐허돼 현재 비석만 남아
-학살의 역사 육시우영
이웃 제삿집 모인 마을사람들
군인이 끌어내 학살하고 방화해
애월읍 하가리에 있는 육시우영의 모습. 원동으로 향하던 토벌대가 하가리 주민들을 이곳에서 총살하고, 마을 주민들의 집을 불태웠다.
애월읍 하가리에 있는 육시우영의 모습. 원동으로 향하던 토벌대가 하가리 주민들을 이곳에서 총살하고, 마을 주민들의 집을 불태웠다.

제주 4·3은 제주의 공동체를 철저히 파괴했다. 지금의 제주시 애월읍 소길리에 자리 잡았던 원동마을은 4·3의 광풍이 몰아닥치며 없어진 마을이다.

1948119연대 군인들이 원동마을 포위하고 들이닥쳤다.

갑자기 나타난 군인들은 주민들에게 공비출몰지역, 적성지역에 살고 있다는 이유로 주민들을 집단 학살했다.

이에 앞서 원동마을로 향하던 토벌대는 애월읍 하가리를 지나다 16채의 가옥에 불을 지르면서 주민들을 육시우영으로 몰아넣고 총살했다.

4·3의 광풍 속 사라진 원동마을

원동마을은 조선시대 제주목과 대정현을 잇는 웃한질의 중간지점으로 4·3 당시에도 나그네가 쉬어 가는 주막이 있었던 마을이다.

구한말 이전에는 웃한길을 따라 제주와 대정을 오가는데 중간에 쉬어가기 위해 원이 설치되고, 주민들이 모여 살게 되면서 원동마을이 됐다.

행정구역상 마을을 가로지르는 하천을 경계로 동쪽은 소길리, 서쪽은 상가리에 해당됐지만 전체 16가구 중 상가리 지경에는 5호 가량밖에 살지 않아 보통 소길리로 분류됐다.

주민들은 주막을 운영하던 가구 외에는 주로 메밀과 조, 콩 등을 경작하거나 말과 소를 길렀다.

일제로부터 해방이 돼도 원동마을에는 큰 변화는 없었다.

현재 평화로가 위치한 이곳에는 수많은 차량이 오가지만 그 당시는 산간마을이어서 해방이 됐다는 사실도 늦게 알았고, 4·3이 발발한 1948년 가을까지도 평상시와 다르지 않게 생활하고 있었다.

하지만 군경토벌대의 초토화작전 대상에는 원동마을도 예외가 아니었다.

19481113일 원동마을에 들이닥친 토벌대는 무장대를 찾아내라며 이날 주민들을 주막거리로 모아놓고 학살했다.

이날의 집단 학살로 30여 명의 주민의 그 자리에서 숨지고, 많은 주민들이 중상을 입었다.

4~5명의 부녀자와 어린아이들이 해안마을로 몸을 피했을 뿐이다.

유족들의 아픔은 또 있다. 이들의 땅은 임자 없는 땅으로 버려져 외지인에게 이전되거나 헐값에 팔려나가 버린 것이다.

이후 학살사건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사건이 발생한 지 40여 년 만인 1990922일부터 24일까지 3일 동안 원동마을 터에서 억울하게 죽은 가족들을 위로하기 위해 원동마을 4·3무혼굿을 지내기도 했다.

원동마을은 잃어버린 마을로 그 흔적만 남아있다.

현재 원동마을 터에는 원지(院址)’라고 쓰인 비석만이 남아서 한때 이곳에 마을이 있었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다.

 

현재 원동마을 터에는 ‘원지(院址)’라고 쓰인 비석만 남아 있다.
현재 원동마을 터에는 ‘원지(院址)’라고 쓰인 비석만 남아 있다.

학살의 역사 육시우영

제주시 애월읍 하가리는 이웃마을 상가리와 더불어 더럭이라는 지명으로 옛부터 불려왔다.

하가리는 4·3 당시 연화못을 중심으로 200여 가구가 살았던 작고 평범한 마을이었다.

해안마을은 아니지만 일주도로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이다.

제주 4·3이 발발한 이후에도 별다른 사건이 벌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주민들은 별다른 걱정 없이 살고 있었다.

19481113일 원동으로 향하던 토벌대가 하가리를 지나다 주민 30여 명을 총살했다. 이 사건을 육시우영사건이라 한다.

하가리 마을회관 인근에는 육시우영이라 불리는 밭이 있다.

이날은 정모씨 집의 제사였다. 제삿집에 사람들이 모여 있자 군인들은 정씨의 집을 중심으로 근처의 집들에 불을 지르면서 주민들을 끌어냈다.

이후 정씨의 집 앞밭인 육시우영에서 30여 명을 공개 총살했다.

이날 정씨의 가족 중에서 5명이 희생당했다. 또 정씨의 집 주변 주택 16채 가량도 전소됐다.

군인들은 총을 난사한 후에 목숨이 붙어 있는 주민들은 대검으로 재차 학살하는 잔인함을 보였다.

군인들은 아이들과 여자들을 꿇어 앉혀놓고 총살 장면을 보게했다.

이 자리에서는 자신의 남편이 총살당하는 것을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지켜봐야 했던 사람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학살을 피하여 목숨을 건진 사람들은 마을근처에 숨어서 떨고 있었다.

마을을 불태우는 불빛 때문에 애월면사무소에서도 이를 확인하러 올 정도였다고 전해진다.

 

원동마을 생존자 고남보씨
원동마을 생존자 고남보씨

피맺힌 울음소리 듣고 숨어지내야 했다

원동마을 출신 고남보씨(86·사진)19481113일 마을 사람들과 함께 결박된 채 토벌대에 의해 끌려갔다.

이날 고 할아버지의 아버지와 누이, 동생이 토벌대에 의해 목숨을 잃었다.

집단학살에서 살아남은 고씨는 군인들이 아무것도 모르는 마을주민들에게 무장대가 숨어있는 곳을 말하라며 겁박했다군인들이 주민들 손을 뒤로 돌려 결박시킨 후 사람 사이를 밧줄로 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폭도를 찾아 마을 주변을 이리저리 끌려 다녔다. 대부분 손을 뒤로 돌려 밧줄로 결박했는데 다행히 나만 앞으로 손을 묶어 놨다날이 어두워지자 군인들이 너희는 10분 내로 총살된다고 했다. 그 소리를 듣고 앞으로 묶인 결박을 풀고 인근 곶자왈로 도망갔다고 말했다.

결박을 풀고 도망을 친 고씨는 계속 된 총소리와 울음소리를 들으며 숨죽였다.

고씨는 곶자왈에서 열매 등을 따먹으면서 10여 일을 숨어지냈다이후 할아버지와 가족들이 살고 있던 하귀리를 찾아 몸을 피했다고 말했다.

고씨는 죽어서도 잊지 못할 통한의 세월을 어찌 말로 다 하겠느냐그날의 기억을 후손들이 잊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 간절한 바람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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