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좌제 망령
연좌제 망령
  • 제주신보
  • 승인 2018.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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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동수, 논설위원

조선 시대 연좌제 광풍이 몰아친 대표적인 시기는 연산군 재위 기간이다. 그중에서도 갑자사화(1504년·연산군 10년) 때는 피비린내가 진동했다. 연산군은 자신의 생모이자 성종비였던 윤씨(尹氏)의 폐비에 대한 원한을 품고 관련된 인물들을 닥치는 대로 처형했고, 이미 죽은 이들을 부관참시(剖棺斬屍)했다. 이때 멸문지화(滅門之禍) 당한 사대부만 230여 명에 이른다.

연좌제의 역사는 고대국가로 거슬러 올라간다. 삼국시대엔 반역자의 가족을 노비로 삼거나 참수했다. 조선 때는 모반대역죄의 경우 죄인은 능지처참하고 아버지와 16세 이상 아들은 교수형에 처했다. 연좌제는 1894년 갑오개혁 때 폐지됐으나 암암리에 통용되어 오다가 1980년 공식적으로 폐지되었다. 하지만 그 후에도 사라지지는 않았다. 어디엔가 웅크리고 있다가 불쑥 나타나 온갖 만행을 일삼았다. 1982년 대학에 진학한 필자의 지인도 장교로 군에 지원했다가 신원조회에 발목이 잡혀 포기했다.

▲이번엔 ‘빚투’(빚 too·나도 떼였다)다. 연예인의 부모에게 돈을 떼였다는 폭로 글이 온라인에 연이어 올라오면서부터다. 래퍼 마이크로닷을 시작으로 래퍼 도끼, 가수 비 등으로 번진 상황이다.

첫 타깃이 된 마이크로닷은 낚시를 국민 취미 1위로 등극하는 데 견인차 구실을 한 ‘도시어부’ 등 모든 방송프로그램에서 하차했다. 누구 말마따나 뜨는 데는 12년, 추락하는 데는 채 일주일도 걸리지 않았다. 그의 부모는 20년 전 충북 제천에서 축산업을 하던 중 주변 사람들에게 연대보증을 세우거나 거액을 빌린 후 뉴질랜드로 야반도주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그로선 세 살 때 일이다. 그 나이에 부모의 사기 혐의에 개입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도 다수는 그에게 책임을 추궁하고 있다. 오늘 이 만큼 되기에는 ‘훔친 수저’가 바탕이 됐다는 이유에서다.

현행 헌법 13조 3항은 “모든 국민은 자기의 행위가 아닌 친족의 행위로 인하여 불이익한 처우를 받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연좌제를 금지하고 있는 것이다.

▲사람이 유명하다 보면 일종의 유명세(有名稅)가 붙는다. 그래도 누구의 아들, 딸이라는 이유로 가렴주구(苛斂誅求)에 가까운 책임까지 물어서는 곤란하다. 연좌제는 구시대의 산물로 폐기됐다. “사과 방식이 불량하다”며 이를 확대 재생시켜 마녀사냥에 활용해선 안 된다. 제주 사람들은 지금도 연좌제란 말만 들으면 몸서리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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