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리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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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실 수필가

날이 밝으려면 아직 한참을 기다려야 할 미명이었다. 여느 때와 같이 운동복을 입고 아래층으로 내려가 현관문을 열었다. ‘아뿔싸’ 잿빛 비둘기 모양의 새가 고개를 푹 숙이고 엎드려 있지 않는가. 순간적으로 고개를 돌렸으나 온 몸의 기운이 땅으로 꺼지고 있었다.

지난여름 며느리의 수태 소식을 접했다. 그날부터 매사에 좋은 것만 보고 좋은 생각만 하자던 정성이 물거품이 되어버렸다. ‘왜 하필 우리 집 현관 중앙에 와서…….’

속수무책이었다. 조간신문 배달원이 입김을 내뿜으며 현관 안으로 신문을 내던지고 새벽공기 속으로 사라졌다. 오토바이의 굉음에 새의 사체에서 눈을 떼고, 신문지 한 장을 빼어 들었다. 묻어주기라도 해야 할 것 같아 신문지를 두 번 접어, 엎드린 새의 배 밑으로 살며시 밀어 넣자, 죽은 듯 엎어져 있던 새의 날개 죽지 한쪽이, 기지개를 켜듯 주욱 펼쳐지는 것이 아닌가. 이럴 수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몸체와 머리가 통통한 것이 비둘기는 아니었다. 나는 새가 아직 살아 있다는 사실이 너무 고맙고 반가워, 신문지에 조심히 올려 안고 집안으로 들어왔다. 눈에 띄는 플라스틱 쟁반에 새를 가만히 내려놓고 안방으로 옮겼다.

우선 114 전화번호를 돌려 동물 보호협회 전화번호를 찾아 놓았다. 이른 아침이라 9시가 되면 구조 요청을 할 요량이었다. 녀석은 다시 죽은 듯이 몸을 웅크리고 꼼짝도 하지 않아 마음이 불길해진다. “따뜻한 곳에 왔으니 이제 고개라도 좀 들어 보렴.”소리를 내 보지만 미동도 없다. 아기 새의 머리를 찬찬히 살펴보니 머리에 귀처럼 생긴 깃털이 보이는 게 부엉이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현듯 언젠가 텔레비전에서 보았던 새들의 이소離巢장면이 떠올랐다. 어미 새는 둥지 속 새끼가 다 자라면 물고 온 먹이를 주지 않고 아기 새가 스스로 날아서 독립을 하도록 훈련시킨다는 내용이었다.

만일 이소 연습 중 탈진한 것이라면 어미 새가 얼마나 걱정을 하고 있을까. 혹 어둠속 둥지 근처에서 먹이를 찾다, 도심으로 날아와 고층 유리에 부딪혀 실신한 것은 아닐까.

새의 상태를 알지 못하여 전전긍긍 하는 사이 9시가 되었다. 찾아 놓은 번호로 전화를 걸었더니 동물구조관리협회 담당이라고 하여, 그곳으로 다시 연락을 하니, 30분쯤 후에 가방을 든 중년의 구조사가 도착하였다.

“새는 어디에 있습니까?”

나는 안방에서 새가 엎드린 쟁반을 들고 거실로 나오며 “아기부엉이 같아요.”라고 하였다. 구조사가 새를 받아 들고 한쪽 손에 앉혀 살피더니 갑자기

“사모님! 이 새는 부엉이가 아니고 소쩍새네요!” 구조사가 황급히 수첩을 꺼내더니 천연기념물 324호로 지정된 희귀 새라며 서두른다. 보고사항이라 구조된 장소와 시간, 구조될 당시의 상황, 나의 인적사항을 적고 여러 각도로 소쩍새 사진을 찍었다. 엉겁결에 나도 손전화기를 들고 새를 찍으며, 새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는 사이 “소쩍새는 다 자란 성체이고요, 아침 일찍 전화해도 즉시 달려옵니다. 천연기념물 길조를 구하셨으니 좋은 일이 있겠습니다.” 라며 새를 상자에 넣고 총총히 자리를 떴다.

하루 종일 얼굴도 자세히 못보고 가버린 소쩍새의 안부가 궁금하여, 동물구조관리협회로 문의하였더니, 지금은 회복중이고 저녁에 날려 보낼 것이라고 하였다. 다행이었다.

 

춥고 어두운 밤, 길을 잃고 탈진하여 무언의 간절함으로 살려달라며, 고개를 푹 숙였던 소쩍새. 자칫 조금만 더 길 쪽으로 나가 쓰러졌더라면 무심한 발자국에 밟혔을 텐데…….

우주 저 아득한 곳에 무슨 생명의 암호가 있어 6차선 대 도로의 고층건물 현관 앞으로 새를 인도한 것일까. 소쩍새의 맑은 촉수가 나의 정성을 감지한 것일까. 모든 존재의 근원에 무위자연無爲自然과 생명체가 유기적으로 이어져 있음을 깨닫는다. 날짐승이 우리 집 안방까지 와 머물다 간 인연에 대하여 여러 생각을 해본다.

 

‘아가야! 부디 소쩍새처럼 길吉하게 이 세상에 나오렴.’

소쩍새가 머물던 쟁반 위에 손을 얹으니, 아득한 창공으로 힘차게 비상하는 새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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