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이와 약속
죽은 이와 약속
  • 제주일보
  • 승인 2018.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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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성.명상가

육신을 떠난 영혼은 시기를 알 수 없지만 남아있는 이들과 끈을 이어가며 때로는 걱정과 근심, 기쁨과 행복을 함께한다. 간절한 기도가 아니어도 손을 내밀면 잡히는 지척이며 안타까워 가슴 두드리는 존재이다. 불현듯 꿈에 보일 수 있으며 잊지 말라는 무언의 표시를 보낸다. 부질없는 미련이지만 원망이나 아쉬움보다는 해주지 못한 미안함과 한때 즐거움에 웃음을 지어낸다. 상황설명에는 꾸밈이 없고 잘한 일에 칭찬을, 나쁜 선례는 매서운 꾸지람을 준다. 변해야 한다는 당부지만 믿고 안 믿고는 당사자들의 몫이라 숙제로 남길 수밖에 없다.

얼마 전 아버지 장례를 치렀다며 오신 분은 착한 이미지 그대로였다. 주변에 누가 알까 부끄러워 숨겼으나 한이 남을까 해서 용기를 냈단다. 부모 슬하의 남매이며 어머니는 오래전에 지병으로 세상을 떠나고 혼자 쓸쓸한 말년을 보냈는데 생전 공직에 있어 비교적 넉넉한 삶을 누렸으며 며칠 건너 한번 들리는 게 효도라 애써 위안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그림자도 없었던 올케가 분주히 오가더니 이내 잠잠해졌단다. 불길한 예감이 들었으나 아니기를 바라면서 그런 기억들이 잊힐 무렵 급작스럽게 본인 스스로 목숨을 끊으셨단다. 후에 알았지만 시신 옆에 있었다는 전화기에는 받지 않은 아들의 이름만 이어져 있었다. 그리고 가관인 게 오빠의 태도였는데 작별인사도 끝나기 전에 할 얘기가 있다며 고인이 생전 작성한 유언장을 공개했는데 이미 재산은 전부 자기 명의로 돌려놨고 통장의 잔고 일부와 시골 자투리땅을 남겨 놓았으니 도장을 찍으라는 반협박으로 재촉한단다. 지나친 독선이다. 심정이 이해 가는 부분이라 격식을 생략한 채 고인과 대화를 원하니 이내 오더니 충분히 예견했으나 법이 아닌 사람의 도리를 믿었던 실수였다며 이제는 약속을 저버린 대가를 받을 거라며 깊은 한숨과 탄식과 남기더니 이제 그만 슬픔을 지우라는 위로를 남겼다. 개운하지 않은 마무리였지만 그 무서움을 알기에 괜한 일을 했나 후회가 들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들린 이야기는 조카가 군대에서 휴가를 나왔다가 패거리 싸움으로 구속됐고 승승장구하던 사업마저 부도가 나 가족이 뿔뿔이 흩어져 지내며 부부 사이에도 갈등으로 심각한 상황이란다. 인과응보라 할 수 있다. 미루어 짐작으로 거짓 유혹의 내용도 유추할 수 있었다. 늦지 않은 후회가 필요했던 경우이다. 혹시라도 미안함에 주저하는 화해가 있다면 먼저 손을 잡아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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