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요무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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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익순 수필가

직장을 퇴직하고 새로운 직업이 없으니 집에서 TV 보는 시간이 많아졌다. 시사와 교양 오락 등 여러 장르가 있지만, 내가 접하는 분야는 주로 뉴스와 시사 보도 프로그램이다. 멀티미디어시대 다양한 정보가 홍수를 이루고 있지만, 내가 선호하는 교양이나 오락프로는 찾아보기 어렵다. 대부분 프로그램이 청장년층 시청자의 눈높이에 맞춰져서 그렇겠지. 그나마 공영방송채널을 통해 월요일 밤에 방송되는 ‘가요무대’를 즐겨 보는 게 위안이 된다.

내가 이 프로를 좋아하는 이유는 음악에 소질이 있어서가 아니다. 노래를 들으며 숨 가쁜 현실에서 잠시 벗어날 수 있는 여유 때문이다. 감수성이 예민하던 청소년시절 아스라한 추억이 유행가 가사에 녹아있다. 파노라마처럼 스쳐가는 지난날의 아련한 추억을 회상할 수 있다. 장년이 된 이 시점에서 유행가에 얽힌 젊은 날의 희로애락을 추억하고 싶은 것이다.

가요무대는 대한민국 대중가요 100년의 역사를 조명한다. 과거와 현재의 시공을 초월한 아름다운 선율이 미디어를 통해 안방에 전달된다. 농경시대에서 오늘날까지 삶에 얽힌 사연들과 당시의 사회상이 생생하게 투영된다. 1923년 최초로 음반에 수록된 대중가요「희망가」에서부터 지금에 유행하는 모든 대중가요를 총망라한다.

대중가요는 그 시대의 사회상과 시류를 반영한다. 일제강점기 고향과 나라를 잃고 타향을 전전하던 당시의 상황을 노래한「타향살이」는 동포의 가슴을 적시며 눈물짓게 했다.

해방 후 1950년대까지는 트로트와 신민요가 주도했다고 한다. 지금까지도 널리 애창되는「비 내리는 고모령」「울고 넘는 박달재」등은 분단과 전쟁이라는 새로운 사회적 경험을 절절한 비애로 표현했다.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오늘도 옷고름 씹어가며 산 제비 넘나드는 성황당 길에/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 알뜰한 그 맹서에 봄날은 간다(후략).’ 「봄날은 간다」는 전쟁 직후의 정신적인 피폐를 위로하는 짙은 서정성으로 일찍이 대중의 큰 호응을 받았다.

정부수립 직후에 발표된「가거라 삼팔선」과 한국전쟁 이후의「이별의 부산정거장」등은 궁핍하고 어렵던 그 시절을 추억하며 지금까지도 애창되고 있다.

1960년대는 미국풍 대중가요인 스탠더드팝이 주류가 되면서「노란 샤쓰의 사나이」가 크게 유행했다. 1960년대 중반「동백 아가씨」를 필두로「섬마을 선생님」, 「돌아가는 삼각지」등이 유행되었다.

1970년대는 포크송과 록의 부상으로「꽃반지 끼고」등이 히트했으며, 비판적 포크의 대표곡으로 거론되는「아침이슬」이 인기를 얻기도 했다.

1980년대는「창밖의 여자」를 필두로 스탠더드팝의 선율에 록을 결합시키면서, 화려한 화성과 선율의 새로운 경향을 만들어냈다.

가요무대는 시대별로 유행했던 대중가요를 골고루 들을 수 있다. 사계나 사랑·이별 등 여러 테마가 특색 있게 펼쳐지고, 애청자의 신청곡이 방송된다. 신청곡에는 구구절절한 사연들이 녹아 있다. 부모님이 즐겨 부르던 애창곡, 추억을 공유한 동창이나 지인들과 함께 듣고 싶은 노래들….

저마다의 사연을 간직한 신청곡을 들으며 세대의 공감을 이룬다. 삶의 모습은 달라도 전하는 사연들은 애청자가 동질감을 느낀다. 한 세대를 풍미했던 불세출의 가수나 작사·작곡가의 일대기도 소개된다. 그들은 가고 없어도 감미로운 선율은 옛 추억과 함께 우리 곁에 영원히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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