쉰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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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구가 줄다보니 항상 식은 밥이 냉장고 구석에서 자리를 떠날 날이 없다. 아무리 적게 해도 혼자 먹는 날이 많아서 식은 밥이 남게 되는데 그러면 처리할 수 있는 곳은 친정집이다.

식은 밥은 가져가고 대신 쉰다리를 가져오게 된다. 쉰다리 맛을 알게 되면서 어머님은 맛있게 먹는 자식들에게 주는 기쁨에 냉장고에는 언제나 쉰다리가 비는 날이 없다.

쉰다리는 밥이 약간 상하게 되면 잘게 부순 누룩과 물을 넣어 발효시키면 되는데 새콤달콤한 맛이 최고의 발효식품이며 유산균덩어리다. 먹다 남은 밥을 그냥 두면 썩어서 버리게 되는데 버리지 않고 먹을 수 있는 다른 음식으로 만드는 생활의 지혜에 어떻게 그런 생각을 다 했을까 감탄사가 절로 난다.

누룩의 역할이 참으로 신기하다. 누룩이 들어감으로 인해 우리 몸에 좋은 새로운 음식으로 거듭나니까 말이다. 쉰다리를 한 모금 마시면서, 얼마 전 아이들과 함께 친정에 갔다가 벌어졌던 일이 생각난다. 쉰다리 한 컵을 주면서 몸에 좋은 것이니까 마시라는 할머니의 권유에 아이들은 얼른 받아 한 모금 먹고는 고개를 흔들며 삼키지도 뱉지도 못하고 화장실로 줄행랑을 쳤던 일이다. 그 일이 있고 난 후로 아이들은 할머니가 먹을 것을 주면 경계의 눈빛으로 얼른 먹지 않고 다른 사람들이 먹는 것을 보고나서야 먹는 이상한 습관마저 생겨났다.

나도 어릴 적에는 쉰다리 근처에도 가지 않았는데 언제부턴가 쉰다리 맛을 알게 되었다. 우리 아이들도 우리가 그랬던 것처럼 이다음에 쉰다리 맛을 알게 되겠지. 아니 쉰다리의 맛을 모르더라도 쉰다리를 좋아하게 되는 아이들이 되었으면 한다.

사람들은 흔히 누룩과 같은 사람이 되라고 한다. 부모의 마음은 다 똑같다. 나로 인해 내주변이 변화되어 새로운 환경으로 바꿔 놓을 수 있는 누룩과 같은 존재. 그런데 여기에 한 가지 더 붙인다면 마음도 쉰다리처럼 발효시키는 법을 배웠으면 한다. 마음이 상하여 썩기는 쉬어도 발효되기는 무지 어렵다. 그렇지만 분명한 것은 썩는 것은 자신에게나 타인에게나 별로 유익이 없는 것이기 때문에 어렵더라도 잘 삭히는 법을 배워야 하겠지.

상한 밥에서 누룩이 발효시키는 역할을 했다면 상한 마음에는 어떤 것이 있어야 잘 삭혀질까? 시간일까, 용서와 내려놓음일까. 아마도 누룩이 들어갈 만큼 마음에 공간이 확보되어야겠지.

<현진숙·제주복식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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