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모이
말모이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페이스북
  • 제주의뉴스
  • 제주여행
  • 네이버포스트
  • 카카오채널

김길웅. 칼럼니스트

지난 설날 영화 한 편을 보았다. 착한 영화 〈말모이〉.

‘말모이’는 한힌샘[一白泉] 주시경 선생이 쓴 순우리말로 ‘말이 모이다’, 곧 우리말 사전이다. 영화는, 조선어학회사건을 모티브로 일경의 탄압 속에도 우리의 말과 글을 지켜 낸 사람들 이야기를 담으면서 매우 신랄했다.

일제강점기, 아프고 힘들던 시대를 버텨내 기적처럼 서울역에서 발견된 원고뭉치, 그게 있어 해방 후 우리말 사전이 발간된 사실에 전율했다. 조선어학회의 끈질긴 노력이 펼쳐지면서, 36년이라는 나라 없는 설움 속에 우리말을 지켜내는 뼈저린 국면으로 빨려들면서 시종 숨 죽였다.

삼양에 있는 ‘누워서 보는 영화관’ 롯데시네마, 푹신하고 넉넉한 좌석이 뜻밖에 불편한 건 왜였을까. 두 다리 죽 벋고 드러누웠는데도 우리말이 당하는 끔찍한 수난을 차마 편히 누워 보지 못해 몇 번인가 몸을 뒤틀었다.

박해가 점차 심해 가더니 극에 달했다. 어학회 사람들이 일경의 군화에 채고 총칼 앞에 처참히 피를 흘렸다. 우리말을 모으는 작업을 하기 위해 서점으로 위장한 조선어학회 현장을 급습한 일경, 그들이 그 귀중한 자료를 마구 내동댕이칠 땐 숨이 막히고 피가 거슬러 흘렀다.

문득 초등학교 때 철없이 일본말을 쓰던 기억이 떠올라 낯 따가웠다. 다마(구슬), 벤또(도시락), 짱깨미(가위바위보), 빤쓰(팬티), 바께스(양동이), 요지(이쑤시개), 즈봉(바지)….

한 지역 사투리를 나열하는 게 눈길을 끌었다. 가위는 가새, 엉덩이는 엉뎅이, 궁뎅이 하며 각지에서 모여든 사람이 특정 낱말을 지역 사투리로 말하는 게 흥미로웠다. 사전에 실릴 낱말에 대한 검토 작업이 그렇게 진행돼 나갔다.

일제가 일본어를 가르치는 학교를 세우면서 그곳에 우리 아이들을 강제로 입학시키고 일본말을 쓰게 강요했다. 발악적이었다. 조선말 선생들이 피신하거나 과목을 바꾸게끔 시달렸다. 창씨개명과 맞물려 설 자리를 잃은 우리말이 날로 시들어 갔다.

조선어학회 회원들은 심지가 굳어 쇳덩이같이 단단한 사람들이었다. 조선광문회에서 주시경 선생과 그 제자 등 한글학자들이 참여해 편찬했으나, 출판되지 못한 채 초기 원고가 조선어학회로 넘어가 조선어사전의 밑바탕이 된다. 결국 조선어학회의 후신인 한글학회에 의해 1957년 총 6권이 완간되면서 달아나온 이름이 ‘한글 큰 사전’이다. 현존 〈말모이〉 원고는 청색 원고지에 붓으로 쓴 것인데, 240자 원고지 기준 157쪽에 이른다.

민족의 정신이요 생명인 우리말·우리글을 담아 우리말사전을 펴내려는 일념으로 우리말 모으기에 나섰던 학자들을 마침내 일제가 검거해 투옥시켰다. 1942년에 일어난 조선어학회사건이다. 투옥된 이가 이극로, 이윤재, 장지영, 최현배 등 무려 33명에 이르렀다. <우리말본>을 엮음으로써 우리 문법의 밑바탕을 닦은 외솔 최현배 선생의 한글 사랑의 정신을 우리는 기린다. 한평생을 오로지 우리말 갈고 닦기에 바친 선비였다. 문법을 말본, 명사를 이름씨, 동사를 움직씨라 하던 그분.

영화 <말모이>는 조선어학회사건을 극화한 항일영화다. 가상의 인물을 통해 일제의 우리말 말살정책에 결연히 맞서던 정황을 드라마틱하게 그렸다.

가슴 울리는 대사가 있었다. “한 사람의 열 걸음보다 열 사람의 한 걸음이 더 의미가 있다.” 영화는 <말모이〉 속 민족의 얼을 그렇게 요약했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