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를 타고
버스를 타고
  • 제주신보
  • 승인 2019.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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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희, 수필가

지난해 연말 즈음에 추위가 매운 날이다. 칠성로에서 열리는 ‘원도심이 와랑와랑’ 거리 축제를 구경하러 갔었다. 세밑을 앞두고 상권 활성화를 위한 행사다. 유명 가수들이 출연하는 공연, 거기다 크로스오버 사중창단 ‘포레스텔라’가 출연한다기에 서둘러 나섰다. TV에서 그들의 공연을 보고 수준 높은 음악성에 매료되어 열렬한 팬이 되었다. 장르를 아우르는 환상적인 하모니에 깊게 빠져들었다.

남성 4명의 개성이 어울려 아름다운 화음을 이루는, 팔색조 같은 매력이 소녀처럼 가슴을 설레게 했다. 나도 모르게 구경꾼 틈에서 손을 흔들고 뻣뻣한 몸이 저절로 리듬을 타는, 내게도 이런 모습이 있었다니. 신문화에 접근하기 어려웠던 거리감을 뛰어넘은 놀라운 변화였다. 아이돌 스타에 열광하는 십대 아이들처럼 아쉬움에 목청 높여 앙코르를 외쳤다. 한데서 날 선 바람조차 잠재울 만큼 감동으로 달떴다. 신세대와의 교감에 눈을 뜬 시간으로, 음악은 누구나 함께 어울릴 수 있는 소통 역할이 될 수 있음을 실감했다. 한겨울 황량한 들녘에 단비가 내린 것처럼 감동적이었다.

돌아오는 길은 열광적이었던 여운으로 좀체 흥분이 가라앉지 않는다. 흔들리는 버스에서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늘 보던 낯익은 거리가 운전할 때와 사뭇 다른 풍경으로 다가왔다. 한때 많은 인파로 북적거리던 골목상권이, 회색빛으로 퇴락해 가는 게 쓸쓸해 보였다. 상점에 하나둘 불이 켜지고, 흐릿한 눈가에 따뜻한 불빛이 등처럼 매달린다.

낯선 길엔 풋풋한 설렘이 존재한다. 때로는 곧고 너른 길 보다, 구불구불 이어진 길에 알 수 없는 기다림으로 가슴이 뛴다. 차를 운전할 때는 앞만 보고 달리느라 옆으로 시선을 둘 여유가 없었다. 내 삶도 고지식하게 한길로만 숨 가쁘게 살았던 지난날이, 무심하게 스치듯 흘러갔을지 모른다. 버스가 이리저리 넓고 좁은 길을 지나 사거리를 돌아가는 것처럼, 나도 이런 삶이었다면 어떻게 달라졌을지.

날 다르게 변하는 세상에서 내가 점점 도태되고 있다는 걸 느낄 때가 있다. 경험해보지 않은 일은 아예 굳은살이 박여 시도조차 하지 않고 자신감을 잃어 간다. 변화에 대한 두려움에 뒷걸음치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식물인간이란 걸 의미한다. 직접 부딪쳐 겪으며 타협하고 받아들이는 결단, 용기 있는 자만이 누릴 수 있는 세상은 널려 있지 않은가.

날이 풀리면 제주의 곳곳을 돌아보리라. 그동안 미처 보지 못한 곳을 속속들이 찾아보고 싶다. 제주를 다 안다고 생각했던 내가, 정작 아는 게 무엇이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버스 노선이 거미줄처럼 전 지역으로 연결되어 있다. 주차며 운전에 신경 쓰지 않고 여유롭게 구경할 수 있어 얼마나 편하고 좋은가. 중간에 환승도 하고 힘들면 훌훌 돌아오면 되는 것을. 나른한 피곤이 뿌듯한 충만감으로, 돌아오는 길은 가방 가득 무엇으로 채워올지 벌써 궁금하다.

북적거리는 거리에서 젊은이들 틈에 생전 처음으로 몸을 흔들며 환호했던 것처럼, 길 위에서 활력 넘치는 삶의 추임새와 만나기를 고대한다. 바람을 가르며 돌담을 허리에 끼고 유채꽃이 흐드러지게 핀 풍경 속에 어우러져, 걸으며 깊이 고뇌하고 사색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내겐 아름다운 풍경은 살아가는데 둘도 없는 벗이요, 녹슬어 가는 감성을 흔들어 깨우는 고마운 스승과도 같을 것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