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친절, 큰 의미
작은 친절, 큰 의미
  • 제주신보
  • 승인 2019.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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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애현, 수필가

대도시답다. 거리마다 삼삼오오 모두 쏟아져 나왔는지 오가는 사람끼리 어깨 부딪치는 일은 예사고 잘못하면 발 걸릴 듯 붐빈다. 식사 후 나오면서 본 거리는 포장마차 앞에도, 찻집 앞에도, 꼬치구이 가게에도 온통 늘어선 줄이다. 이미 먹거릴 산 사람들은 여기저기서 나이와 무관하게 긴 대 꼬치를 비스듬히 세워 하늘 향한 입안으로 한 점씩 넣고 있다. 그 모습이 우습기도 하고 또, 우리 동네에서 쉬 볼 수 없는 낯선 풍경에다 알아보는 사람이 없을 것이란 생각에 용기를 얻어 하나 사 맛이나 보고 싶었다.

대체 어떤 맛이기에 이렇게 줄서며 기다릴까 하는 생각에 우리도 같이 끼어들었다. 한참 기다리는데 주인이 일행이냐고 묻는다. 그렇다고 대답하는 순간, 빙 둘러선 우리 가족이 영업에 방해 되나 싶은 미안한 마음에 눈치껏 옆으로 비켜섰다. 아마 그때 상황에 우리는 거의 비슷한 생각이었을 게다.

잠시 후 용기에 음식을 담아 건네며 이쑤시개처럼 생긴 꼬치를 식구 수대로 주는 게 아닌가. 생각과 달리 짧은 시간 일어난 일련의 행동을 보며 우린 잠시 마주 보다가 주인을 향해 고맙다고 허리를 숙였다. 상황이 같으니 약속이나 한 듯 서로의 행동도 같았다.

야박하고 깍쟁이란 표현으로 서울인심, 서울인심 하는 말을 자주 쓴다. 최소한 우리 가족 넷이서 재미 삼아 맛보려 삼천 원짜리 음식을 사 먹던 그날만큼은 내가 사는 곳의 인심보다 훨씬 나았다. 고맙단 말을 할 일이 별로 없는데, 말만으론 모자라 주인의 작은 친절에 연신 고마움을 표했다. 열 번을 숙여도 아깝지 않을 것 같았다. 영문도 모른 채 이 사람 저 사람 숙이는 모습에 주인도 덩달아 고개 숙이며 답례한다.

탈무드에 ‘모르는 사람에게 베푸는 친절은 천사에게 베푸는 친절과 같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아는 사람이야 아니까 베풀 수 있다지만, 생면부지의 사람에게 친절을 베푼다는 것은 단순한 상술이 아닌 진정성이 몸에 배어야만 가능한 것이란 생각이다. ‘기꽈, 아니꽈’ 등 짧은 표현에 따른 언어적 특성도 있고, 바쁜 나머지 오가는 투박하고 강한 억양이 빚는 독특한 어감, 거기서 느끼는 정서도 있는 법이다. 쓰는 말이 다르니 억양도, 그로 인해 느끼는 감정인들 어찌 같을 수 있으랴.

가격을 묻노라면 어느새 마구잡이식으로 물건을 담아 주는 바람에 어정쩡하게 받아들 때, 비록 큰돈은 아니지만, 가성비를 생각하느라 결정하기도 전에 이미 물건을 쥐여 줄 때의 난감함, 얼마 되지 않은 돈에 주변 시선이 의식되어 속으로 부글거리면서도 아무렇지도 않은 척 돈과 맞바꾼 물건을 볼 때의 그 불편함 등. 집에 들어오자마자 분풀이하듯 패대기치며 감춰 뒀던 독을 피웠던 적도 있지 않은가.

불쾌한 감정으로 속앓이 경험이 있었던 터라 그 후부턴 아예 다른 매장을 찾는다. 면대 면이 아니니 물건을 사는 데 친절함도 없지만, 불친절로 마음 상하는 일 또한 없다. 소비자 권리라는 거창함이 아니라도 좋다. 내 돈 주면서 불쾌감을 받고 싶지 않은 것은 모두 한마음일 게다.

많은 사람이 제주를 찾고 있다. 빼어난 자연 풍광에 친절 섞인 사람의 맛과 멋이 더해진다면 그야말로 금상첨화 아닌가. 자연의 가치와 함께 이곳 제주를 찾는 이들에게 건네는 친절의 크기로 마음 따뜻함은 덤이다.

기다리며 먹었던 음식의 맛보다 오래 기억되는 건 작은 친절이 준 사람향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