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턱을 관통한 총알…4·3으로 무너진 삶의 흔적이…
(8)턱을 관통한 총알…4·3으로 무너진 삶의 흔적이…
  • 홍의석 기자
  • 승인 2019.03.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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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림 월령리 故 진아영 할머니 집
생전에 쓰던 가재도구 등 보존돼
4·3 토벌대 총격에 아래턱 잃고
고통 속에 살다간 모습 ‘그대로’
국가폭력 희생여성 조명 못 받아

한 여자가 울담 아래 쪼그려 있네/ 손바닥 선인장처럼 앉아 있네/ 희디 흰 무명천 턱을 싸맨 채// 울음이 소리가 되고 소리가 울음이 되는/ 그녀, 끅끅 막힌 목젖의 음운 나는 알 수 없네/ 가슴뼈로 후둑이는 그녀의 울음 난 알 수 없네/ 무자년 그날, 살려고 후다닥 내달린 밭담 안에서/ 누가 날렸는지 모를/ 날카로운 한발에 송두리째 날아가 버린 턱/ ()지금 대명천지 훌훌 자물쇠 벗기는/베롱한 세상/한 세상 왔다지만/꽁꽁 자물쇠 채운 문전에서/한 여자가 슬픈 눈 비린 저녁놀에 얼굴 묻네오늘도 희디흰 무받치고/울담 아래 앉아 있네/한 여자가.’ - 허영선의 시 무명천 할머니-월령리 진아영

토벌대의 총에 턱을 맞아 평생 무명천으로 감싸고 살아온 고(故) 진아영 할머니의 삶터. 제주올레 14코스인 제주시 한림읍 월령리에 있다.
토벌대의 총에 턱을 맞아 평생 무명천으로 감싸고 살아온 고(故) 진아영 할머니의 삶터. 제주올레 14코스인 제주시 한림읍 월령리에 있다.

4·3 때 얼굴에 총탄을 맞아 한평생 턱 없이 살다가 고()진아영 할머니(1914~2004)는 후유장애로 인해 평생 죽기보다 힘든 고통 속에 살았다.

얼굴에 무명천을 두르고 다닌다 해서 무명천 할머니라고 불린 진아영 할머니는 4·3의 광풍 속 비극과 고통의 상징으로 남아있다.

제주시 한림읍 월령리에 남아있는 두 칸짜리 작은집에는 진아영 할머니의 삶이 녹아있다.

 

4.3의 상처를 평생 간직하고 살다간 무명천 할머니의 삶을 기억하려는 사람들이 벽화를 그려놓았다.
4.3의 상처를 평생 간직하고 살다간 무명천 할머니의 삶을 기억하려는 사람들이 벽화를 그려놓았다.

4·3 아픈 역사의 상징

진아영 할머니는 고향 판포리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아가던 순박하고 평범한 아낙이었다.

4·3이 일어난 다음 해인 19491, 35살의 나이에 집 앞에서 경찰이 무장대로 오인해 발사한 총탄에 턱을 맞고 쓰러진 뒤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졌다.

이 사건으로 인해 진아영 할머니는 아무 이유 없이 아래턱을 완전히 잃어, 죽기보다 힘든 삶을 살았다.

진아영 할머니는 부모님이 돌아가시자 자신을 돌봐줄 사람이 없어져 고향을 등지고 언니와 사촌들이 살고 있던 월령리로 이주했다.

진아영 할머니는 생전 정체 모를 불안감에 시달리는 등 그녀의 삶은 평생 트라우마가 지배했다.

할머니는 모든 문마다 자물쇠를 달았고 문을 잠가야만 집 밖에 나설 수 있었다.

할머니는 남 앞에서 음식 먹는 모습을 보인 적이 없다. 사람들 앞에서는 음식을 흘리는 모습을 보이기 싫었기 때문이다.

할머니는 말도 못 하고 음식도 제대로 씹지 못해 위장병을 달고 살았다.

진아영 할머니는 바닷가에서 톳을 캐다 팔고 이웃들의 농사를 도우며 약값을 벌고 하루하루를 연명했다. 할머니에게는 자손이 없다.

제대로 씹을 수 없던 진아영 할머니의 몸은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성한 곳이 없었다.

평생 위장병과 영양실조로 고통받았던, 진아영 할머니는 20049, 성이시돌 요양원에서 삶을 마감했다.

 

故 진아영 할머니의 생전 모습을 만날 수 있는 삶터 내부 모습. 이곳에는 진아영 할머니가 생전에 사용하던 가재도구 등이 그대로 보존돼 있다.
故 진아영 할머니의 생전 모습을 만날 수 있는 삶터 내부 모습. 이곳에는 진아영 할머니가 생전에 사용하던 가재도구 등이 그대로 보존돼 있다.
故 진아영 할머니의 생전 모습을 만날 수 있는 삶터 내부 모습. 이곳에는 진아영 할머니가 생전에 사용하던 가재도구 등이 그대로 보존돼 있다.
故 진아영 할머니의 생전 모습을 만날 수 있는 삶터 내부 모습. 이곳에는 진아영 할머니가 생전에 사용하던 가재도구 등이 그대로 보존돼 있다.

무명천 할머니삶 고스란히

제주올레 14코스인 제주시 한림읍 월령리에서는 진아영 할머니의 삶터를 만날 수 있다.

4·3후유장애의 삶을 살다 간 진아영 할머니를 위로하기 위한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삶터는 몇 년간 방치됐다.

할머니의 삶을 잊지 않고 기리고 싶어 했던 사람들이 모여 진아영 할머니 삶터 보존위원회를 만들어 할머니의 삶터를 정비했다.

1칸 부엌 1칸의 작은 규모의 삶터에는 진아영 할머니 모습이 담긴 사진이 걸려있으며, 생전에 사용하던 가재도구 등이 그대로 보존돼 있다.

4·3 당시 많은 여성들이 국가폭력 속에서 희생됐지만 조명받지 못했다.

2004년 세상을 뜰 때까지 할머니를 돌본 건 국가가 아니라 가족이었다. 4·3 후유증에 시달리는 사람들에 대한 사회적 관심은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특히 후손이 없거나 끊긴 4·3 희생자는 잊혀지고 있다. 4·3 유적들 가운데 일부는 무관심 속에 방치되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는 등 많은 관심이 필요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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