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유공자 인정 언제쯤…후손은 100년의 시간과 씨름 중
(9)유공자 인정 언제쯤…후손은 100년의 시간과 씨름 중
  • 김두영 기자
  • 승인 2019.03.1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제주지역 항일운동가 최소 500여 명, 독립유공자 인정 183명 불과
김장환·한문옥의 후손들, 매년 서훈을 신청하며 명예 찾으려 노력
지난 1일 조천체육관에서 개최된 3·1절 기념행사에서 올해 독입유공자 서훈을 받은 김백능 선생의 후손들이 훈장을 받고 있는 모습.
지난 1일 조천체육관에서 개최된 3·1절 기념행사에서 올해 독입유공자 서훈을 받은 김백능 선생의 후손들이 훈장을 받고 있는 모습.

100년 전 제주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일제의 침탈에 항거해 대한독립 만세를 외치면서 몸을 던졌다.

그러나 100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 독립유공자로 인정된 사람은 183명에 불과하다 그동안 제주지역에서 활동내역이 밝혀진 항일운동가가 최소 500여 명 이상인 것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 숫자다.

이 때문에 아직도 내 할아버지, 내 할머니의 명예를 찾지 못한 후손들은 응어리진 한을 풀지 못한 채 지난 100년의 시간과 씨름하고 있다.

이들은 항일운동에 대한 공적을 증명할 객관적 자료를 찾지 못하거나 잃어버려 속앓이만 하고 있다.

김장환 선생
김장환 선생

조천만세운동 이끌었지만항일 이후 행적 묘연하다

제주지역 항일운동가이자 제주지역 최대 항일운동 중 하나인 조천만세운동의 주역 중 한명인 김장환 선생 역시 조천만세운동이 벌어진 지 100주년을 맞이한 지금까지도 독립운동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제주시 조천읍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유학하며 사립 휘문고등보통학교에 다니던 김정환은 서울에서 19193·1운동에 가담했다.

하지만 3·1운동 이후 경찰이 시위 참여 학생의 색출에 나서자 김장환은 독립선언서를 숨긴 채 제주로 귀향, 숙부 김시범 선생과 함께 조천만세운동 계획을 수립했다.

이후 321일 미밋동산(현 조천만세동산)에서 숙부 김시범과 함께 조천만세운동을 전개한 김장환은 시위대 500여 명과 함께 제주 성안을 향해 행진하던 중 경찰에 의해 체포돼 징역 8월의 옥고를 치렀다.

수감생활을 마친 김장환은 1921년 동미회를 설립한 후 19203월 사망한 백응선의 묘소에 기념비를 비밀리에 세우는 등 항일운동을 이어갔다.

특히 김장환은 192583일 서울 서린 식당에서 14개 청년단체의 대표 50명이 모여 조직한 경선부근 청년단체 연합회 기성회의 기성위원 19명 중 한명에 뽑혀 활동하기도 했다.

이후 김장환은 동아일보 기자로 활동하다 평양 출신의 김혜원과 재혼, 1944년 평양으로 거주지를 옮겼고 얼마 후 조국이 해방되면서 그대로 북에 남았다.

김장환의 후손들은 조천만세운동을 주도하고 옥고를 치른 후에도 멈추지 않고 항일운동을 이어간 김장환에 대해 2006년부터 독립운동 유공자 등록을 신청했지만 10년이 지나도록 김장환은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항일운동 이후 북에 남은 만큼 관련 행적이 불분명하다는 이유에서다.

지난해 광복절 당시 김장환과 함께 조천만세운동을 이끌었던 숙부 김시범이 6차례의 탈락 끝에 99년 만에 유공자로 인정받았고, 올해 제주 3·1운동 기념식에서 조천만세운동 선봉에서 활약한 독립운동가 김백능 선생에게 대통령 표창이 전수된 것과는 대조적이다.

김시범의 손자이자 김장환의 조카인 김용옥씨는 도대체 왜 아직도 당숙이 서훈을 받지 못했는지 알 수가 없다면서 당숙이 제대로 된 평가를 받을 수 있도록 앞으로도 최선의 노력을 다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한문옥 선생
한문옥 선생

제주해녀항일운동 토대 마련했지만서훈 신청 잇따라 고배

제주 출신으로 광주학생독립투쟁에 참여하고 지하조직을 통해 제주해녀항일운동의 토대를 마련했던 한문옥 선생 역시 2006년부터 꾸준히 독립유공자 서훈을 신청을 하고 있지만 아직도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제주도 북군 구좌면 하도리 출신의 한문옥은 광주공립농업학교(현 광주자연과학고등학교)에 재학 중이던 1929113일 광주학생항일운동 비밀지하 단체인 성진회의 창립 3주년을 맞아 거리로 뛰쳐나와 일본 제국주의를 타도하자, 식민지 노예교육을 철폐하라, 우리는 자유와 독립을 원한다등의 구호를 외치며 동포여 궐기하라는 내용의 전단지를 살포하는 등 항일투쟁을 전개했다.

이 과정에서 경찰에 검거된 한문옥은 일본을 배반했다는 이유로 졸업을 3개월 앞두고 퇴학처분을 받았다.

그렇게 제주로 돌아오게 된 한문옥은 1930920일 항일운동 지하비밀 단체인 민중운동자 협의회에 가입, 해녀들의 민족의식을 고취시키는 교육을 담당하며 항일운동의 맥을 이어갔다.

그러다 1932112일 벌어진 제주해녀항일운동을 계기로 민중운동자 협의회가 경찰에 적발되며 한문옥도 붙잡혔으며, 이후 목포경찰서에서 5개월간 옥고를 치르게 된다.

한문옥의 후손들과 제주시 구좌읍 하도리 주민들은 2006년 독립유공자 서훈을 신청했지만 적극적 독립운동성격 불분명 등의 사유로 지속적으로 고배를 마셔야 했다.

광복회 제주특별자치도회는 수많은 항일운동가들이 자신들의 공적조차 인정받지 못하는 지금의 현실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광복회 관계자는 그동안 전개된 제주지역 항일운동가 연구를 통해 밝혀진 항일운동가들은 약 500여 명에 달하지만 이들 중 독립운동가로 추서된 인물은 올해까지 183명에 불과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아직도 독립운동가로 인정받지 못한 분들 중에는 후손들에 의해 그 행적이 뚜렷하게 드러난 분들도 많다. 조천만세운동의 김장환 선생이나 제주해녀항일운동의 한문옥 선생도 이와 같은 상황이라며 하지만 국가의 이념분쟁 등의 이유로 뚜렷한 공적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광복회 관계자는 수많은 독립운동가 중에는 후손을 찾지 못해 제대로 된 추서조차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국가에서 보다 적극적으로 독립유공자를 발굴하고 이들의 후손을 찾는 등의 유공 사업을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1932년 제주해녀항일운동 당시 잡혀간 법무부 광주지방검찰청 목포지청의 형사피의자 명단. 붉은 원안에 한문옥의 이름이 적혀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1932년 제주해녀항일운동 당시 잡혀간 법무부 광주지방검찰청 목포지청의 형사피의자 명단. 붉은 원안에 한문옥의 이름이 적혀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