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룽지와 숭늉 같은
누룽지와 숭늉 같은
  • 제주신보
  • 승인 2019.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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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희 수필가

오름에서 내려오다 점심때가 되어 길가에 있는 음식점에 들렀다. 가끔 지나다 보면 좁은 도로 양쪽으로 꼬리를 물고 세운 차들을 보고, 음식 맛이 괜찮은가 보다 생각했던 집이다. 기다렸다 먹는 즐거움, 맛있는 음식을 기다리는 것은 지루하지 않다. 그만큼 충분한 보상이 돌아온다.

조그마한 뚝배기에 보글보글 끓는 순두부와, 구수한 냄새를 풀풀 흘리며 돌솥밥이 나왔다. 나무 솥뚜껑을 열자 토독토독 밥이 솥에 눌어붙으며 내는 소리가 시장기를 돋운다. 찬 없이도 한 그릇을 뚝딱 비울 것같이 군침이 돈다. 얼큰한 순두부 뚝배기에 밥을 퍼 넣고 돌솥에 물을 부어 뚜껑을 덮었다. 순두부에 비빈 밥을 다 먹을 때까지 솥에선 보글보글 숭늉이 끓는다. 밑반찬도 맛깔스럽지만, 돌솥에 금방 지어내는 밥과 누룽지 맛에 반해 자주 찾는다.

흰 쌀밥을 살짝 눌려 숭늉을 끓여내면, 속탈로 고생할 때 불편한 속을 달래기 좋다. 깊은 맛은 도톰하고 노르스름하게 눌려 끓인 누룽지는, 한 끼 가벼운 식사로도 그만이다. 뜨끈뜨끈한 숭늉까지 후룩후룩 마시고 나자 몸이 노곤하게 풀린다. 속도 따뜻하고 포만감에 하루가 더 부러울 것이 없이 돌아왔다.

쌀이 귀해 어렵던 시절 얘기다. 고향 집에선 가을 초에 이른 벼를 수확해, 동네 어른들께 햅쌀로 점심을 대접했다. 많이 짓는 밥은 무쇠가마솥에 장작불을 지펴야 제격이다. 금방 지은 밥에선 기름이 자르르 흐르고 달착지근한 햅쌀 냄새가 얼마나 고소하던지. 쌀뜨물을 받아 무쇠가마솥에서 누룽지를 푹 끓여 숭늉을 내면, 어른들이 보약 같다며 연신 사발 채 들이켜시던 모습이 잊히지 않는다. 지금은 이런 누룽지나 숭늉 맛을 잃어버린 지 오래다.

누룽지에 대한 기억이라면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야트막한 오르막을 지나 우리 집으로 오는 길 오른쪽으로, 지대가 낮은 아랫집 부엌 쪽문이 나 있었다. 아궁이에 불을 지펴 밥을 하면서, 매캐한 연기에 부엌문을 열어 놓고 밥을 하던 이는 고모 친구였다. 연로하신 부모님을 홀로 모시고 사는 외로운 처지였다.

해거름 할아버지께선 아랫동네에서 놀고 있던 나를,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부르시곤 했다. 숨 가쁘게 언덕을 올라오다 쪼그리고 앉아 쪽문으로 아랫집 부엌 안을 내려다보면, 그분은 기다렸다는 듯 손짓으로 불러 금방 긁어낸 누룽지를 건넸다. 배가 고팠던 참에 동글동글 뭉쳐 조그마한 손에 쥐여 주었던 누룽지는, 허기를 채워준 한 줌 따뜻한 정이었다. 고향 생각이 나거나 저녁노을이 붉게 물든 날, 북쪽 하늘을 올려다보노라면 종종 떠오르는 분이다.

점점 더운 음식이 입에 당긴다. 별맛이 없더라도 따뜻한 국물 한 그릇이면 추위는 물론, 헛헛한 마음조차 위로를 받을 만큼 좋다. 입맛이 없거나 속이 편치 않을 때 압력솥에 일부러 누룽지를 만들어 끓인다. 훌훌 불며 마시다 보면 심신이 편안해진다.

세상이 점점 각박해 지고 있다. 서로 보듬고 의지하며 살던 시절로 돌아가긴 요원할 것 같다. 누룽지같이 구수하고 숭늉처럼 따뜻한 사람이 곁에 있다면, 헛된 삶을 산 게 아니라는 말이 가슴에 닿는 요즈음이다. 삶이 무거워 힘들 때, 진실이 통하지 않거나 몸이 불편해 괴로울 때, 이런 마음을 나눌만한 이가 있다면 귀한 재력에 비할 바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어디쯤 서 있었는지. 인간관계도 자신이 엮는 가장 중요한 삶의 일부일 텐데, 새삼 지나온 길을 되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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