땀방울로 일궈낸 제주4·3 무죄 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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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도민연대 양동윤 대표, 강미경·김영란 연구원
진상규명 위해 전국 형무소 찾아…자료 수집 끝에 재심 청구

사진 왼쪽부터 양동윤 대표, 강미경·김영란 조사연구원,
사진 왼쪽부터 양동윤 대표, 강미경·김영란 조사연구원,

4·3당시 군사재판으로 옥살이를 해야 했던 4·3생존수형인들이 70년 만의 재심을 통해 무죄 선고를 받은 가운데 이번 재심재판을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수년간 땀을 흘려온 이들이 있다.

바로 제주4·3진실규명을 위한 도민연대(이하 4·3도민연대)의 양동윤 대표와 4·3진상조사단의 강미경·김영란 조사연구원이다.

이들은 4·3생존수형인들에 대한 아무런 정보도 남아있지 않은 상태에서 직접 발로 뛰어 조사와 자료 수집에 나서며 70년 만의 재심이 이뤄지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들이 4·3생존수형인들에 대한 재심에 나서게 된 것은 1999년 ‘제주4·3의 진상을 규명하고 명예를 회복하기 위한 특별법’이 제정되는 과정에서 공개된 수형인 명부가 계기가 됐다.

4·3도민연대는 수형인 명부가 공개된 이후 수형인명부에 등재된 이들의 진상규명을 위해 전국 14곳의 형무소를 직접 방문하는 전국순례에 나섰다.

양동윤 4·3도민연대 대표는 “그 당시 4·3생존수형인들은 4·3의 실질적인 고통을 받은 당사자임에도 불구하고 진상조사조차 이뤄지지 않았다”며 “이에 ‘우리가 하자’고 의견을 모으고 2013년 진상조사단을 구성해 생존수형인들에 대한 조사에 나섰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조사 과정은 쉽지 않았다. 너무 오랜 세월이 지나 흔적이 남지 않은데다 4·3에 대한 이야기 자체가 오랫동안 금기시 된 만큼 증언을 받는 것도 어려웠기 때문이다.

강미경 조사연구원은 “4·3을 조사하게 되면서 아무래도 나이 든 분들을 중심으로 찾아갈 수밖에 없다”며 “그분들 중에는 분명히 관련 내용을 알고 있음에도 ‘나는 모르겠다’며 감추는 이가 대부분이었다”고 말했다.

오랜 기간 차곡차곡 자료를 모으고 생존해 계신 수형인들을 찾아낸 4·3도민연대는 마침내 2017년 4월 19일 제주지방법원에 군사재판에 대한 재심을 청구했고, 2년 후에는 사실상 무죄 선고인 선고유예 판결을 이끌어 냈다.

김영란 조사연구원은 “솔직히 재심에 대한 선고가 이뤄질 때보다 재심을 청구할 때가 잊히지 않는다”며 “재심선고가 이뤄진 후 어르신들과 이야기를 나눴는데 ‘이제는 명예회복을 했으니 하루라도 더 살아야겠다’고 말하시는데 이를 지켜보며 큰 보람을 느꼈다”고 밝혔다.

70년 만의 재심 판결을 이끌어 냈지만 아직도 많은 과제들이 남아있다.

양동윤 대표는 “현재 추가 재심을 청구하는 한편, 돌아가신 분들과 행방불명된 이들의 명예도 회복할 수 있도록 4·3특별법 처리 등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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