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밭을 보고 있노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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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익수 시인·수필가·아동문학가

보리가 익어갈 때면 은혜로운 계절이 턱 앞에 다가왔음을 느끼게 된다.

어머니의 정성스런 손길이 한 알 한 알 결실을 맺어 굶주린 배를 채울 수 있는 기대감을 저버릴 수 없기 때문이니라.

늦가을에 씨 뿌린 보리는 혹독한 겨울에도 얼어 죽지 않고 파릇 파릇 자라면서 생동감을 자랑한다. 곧이어 5월말이면 곡식을 만들어주는 귀한 작물로 밥상에 오른다.

그리 손이 많이 가지 않아도 강하게 자라는 것을 보면, 끈기가 제법이다. 소싯적에 추억 한 토막이 뇌를 스친다. 보리밭이 눈으로 덮힐 때면 동네 아이들은 신들인 경주마처럼 달리고 또 달린다. 가름 한 복판에는 문중 소유의 운동장 같은 한밭이 있었다.

아이들이 다 모여들면 두 패로 나뉜다. 축구시합을 하기 위해 편을 가른 것이다. 골문은 밭담 두 개를 놓고 오프사이드 없는 경기로 승부를 가려질 때까지 무조건 공을 차 넣으면 되는 것이다.

산두 짚으로 똘똘 뭉쳐 축구공 크기만 하게 만들어서 칡으로 감싸게 되면 보기 좋고 단단한 공은 완성된다.

아이들이 뜀박질로 다져지는 보리밭. 어르신들은 열심히 밟으라고 격려한다. 그래야 뿌리가 단단히 깊게 내려 건강하게 자라게 된다며 독려를 아끼지 않았던 것이다. 눈과 흙으로 뒤범벅이 된 몸은 녹초가 되도록 있는 힘을 다해 보리밭을 누비고 누볐다.

추억의 한 계단 다시 뛰어 넘으면 보리밭은 연인들의 사랑을 손짓하는 장소로 바뀌기도 한다.‘보리밭 사이길로 걸어가면 뉘 부르는 소리 있어 나를 멈춘다. 옛 생각이 외로워 휘파람 불면 고운노래 귓가에 들려온다.’ 마음속의 가곡의 보리밭 풍경은 우리를 고향의 한 켠으로 데리고 간다.

다시 한 고개를 넘어보자. 5월에 이르면 그 옛날 배고픈 고갯길이 익어간다. 보리고개는 산고개가 아니다. 햇보리가 나올 때까지의 넘기 힘든 고개란 뜻으로 묵은 곡식은 다 떨어지는 눈물의 고개 또는 기아의 고개였다.

그러니, 보리가 익어갈 때면 은혜의 계절로 다가오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우리의 부모님들은 식구들을 굶주리지 않도록 하려고 걱정이 태산 같았다.

현실로 들어서고 보니, 보리를 재배하는 농가도 가뭄에 콩 나기고, 아이들도 줄어들어 두 패로 나뉘어 축구를 할 수 있는 팀원을 구성할 수도 없게 되었다.

세월 탓일까? 환경 탓일까? 돈 탓일까? 그 어느 누구에게 물어봐도 정답 찾기 어렵다. 그래도 푸른 보리밭을 보고 있노라면 마음한 구석은 배부르게 한다는 심정을 저버릴 수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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