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1) 水翁朴永燦/靑韻(수옹박영찬/청운)
(141) 水翁朴永燦/靑韻(수옹박영찬/청운)
  • 제주신보
  • 승인 2019.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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作詩 南軒 金粲洽(작시 남헌 김찬흡)

水翁生四子 수옹생사자 용수 마을 수옹께서 아들 넷 두고/

軍學海兵鈴 군학해병령 학도병으로 씩씩한 해병이었소/

子起賢敎授 자기현교수 아들 기현은 교수요/

慈娥首大熒 자아수대형 며느리 정자아는 서울대 교수/

官登農重職 관등농중직 벼슬은 농촌진흥원 요직/

今岳畜場經 금악축장경 금악 목장을 마련 운영하네/

奔走公私事 분주공사사 공사 일로 분주하더니/

家和壽福馨 가화수복형 화목 속에 수와 복이 향기로워라/

■주요 어휘

=할아비 옹 =방울 령 =반짝일 형 今岳(금악)=검은 오름 重職(중직)=농촌진흥원 요직 =향기로울 형

■해설

사람은 누구든 배움에서 맺어진 벗을 가장 가까운 친구 혹은 친우라 부른다. 예전에 한문을 배우던 시절에는 같은 벼루를 쓰는 사이라 하여 동연생(同硯生)이란 말을 많이 썼다. 현대적인 학교가 탄생하면서 동문생 혹은 동창생이란 어휘로 발전하였다. 같은 교문으로 출입하면서 우정을 쌓는다고 해서 동문, 교실 창문을 같이하여 동창생이라고 부른다. 평생 우정이 돈독하게 맺어지는 시기로 영원히 잊지 못할 친교가 이루어진다.

이 한시에서 수옹(水翁)이란 중·고 학창시절을 함께 하였던 용수 마을의 늙은이 동갑내기를 등장시켰다. 1945년 일제강점기를 마감하고 1947년 당시 유일한 6년제인 제주농업중학교에 입학하면서 학우로서 우정을 깊이 이어왔다. 어려웠던 아픈 4·3, 4년이 되자 삶과 죽음이 오가던 6·25 참극에, 아침에 일어나 목을 만져보고 붙어있구나! 하고서야 하늘을 쳐다보았다. 무더운 여름 방학 어느 날 징집 받아 그는 학도병으로, 인천상륙과 서울 탈환 싸움에 날랜 사나이 기상을 펼쳤고, 나는 소집을 당한 후 아버지의 급성 간장염으로 특별 휴가를 주어 한림병원에 간 사이에 학우는 출정한 상태였다. 그는 2년여를 군문에서 보내고 귀향하여 농촌진흥원과 금악 마을에 목축장을 마련해 제주농업학교에서 배운 지식을 기반으로 축산업에 열중하였다.

동문들이 연륜이 들자 제농42란 동기동창회가 비로소 탄생되었다. 은사를 초청하여 사은회도 열려 흐뭇했다. 세월이 꾀 흘러 수옹이 나타나 남헌 수고 많았소. 나는 금악에서 목축업을 해서 동문회에 도움을 못 드렸소이런 수옹의 진솔한 뜻이 고마웠다. 또 이어 앞으로 제주성안으로 삶을 옮길 계획이니 동창회의 심부름을 하겠소이런 연후 20여 년 동안 동우회 총무 간사를 맡아 해병대 일과 함께 오늘까지 일하고 있다.

그리고 최근에는 나의 원고 작업을 돕는 중에 위의 한시를 지어 병풍서를 마련해 주니 더욱더 가까워졌다. 노년에 진솔한 우정을 정말 자랑할 만하지 않은가! <해설 남헌 김찬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