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낯이 아름다워야 자연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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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정 수필가

어머, 섬에서 섬으로 오셨군요.”

일본인 이민 5세라는 우버택시(Uber) 기사가 반색을 한다. 하와이의 오아후에서 빅아일랜드로 이동하기 위해 공항으로 향하던 중이었다. 한참을 한국 음식의 건강친화성을 추켜세우던 그녀는 오아후섬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이 무엇인지 물어왔다.

공기요,’라는 대답이 냉큼 목을 밀고 올라왔지만 꿀꺽 삼켰다. 알량한 자격지심이 내 입을 틀어막았기 때문이다.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맑은 공기가 중한 줄을 알기나 할까. 제주나 하와이나 출신이 같은 화산섬이건만.

실제로 내가 군침을 삼켜가며 부러워했던 것은 잘 보존된 자연이었다. 자연을 괴롭히지 않고 있는 그대로 내버려 두려는 노력. 자연이 제 모습을 잃지 않도록 인간이 양보해주는 배려.

육지에 살 적 제주여행에서 가장 마음이 설렜던 곳이 산굼부리였다. 수년 후 그리움을 안고 다시 찾은 산굼부리는 성형수술을 거친 낯선 모습이었다. 변심해 버린 옛 연인을 마주한 듯 마음이 쓰라렸다. 지금은 제주에 살고 있지만 다시는 눈길을 주지 않는 곳이 여기다.

와이키키 해변 동쪽으로 다이아몬드 헤드라는 유명관광지가 있다. 우리 제주의 성산일출봉을 연상케 하는 칼데라 지형의 분화구다. 분화구 직경이 1가 넘는 곳이다. 몰려드는 관광객에 비해 주차 공간은 어이없을 정도로 부족했다. 일출봉 주차장 면적의 6분의 1도 채 안되어 보인다. 올림픽경기장보다 훨씬 넓은 분화구는 한가로운 초원이다. 우리나라 같음 이미 다 주차장이 되었음직한 공간이다. 주차공간을 못 찾아 더운 날씨인데도 차를 언덕 아래에 주차하고 한참을 다시 걸어 올라와야 했다.

트레일은 왕복 두 시간 정도 걸린다. 정상까지는 미군 포대의 방어요새를 만들 당시인 1908년에 닦아 놓은 옛길이 그대로 사용되고 있다. 물자를 실어 나르는 당나귀가 다녔던 구불구불 좁은 흙길과 돌계단, 좁고 컴컴한 터널이 전부다. 화장실, 음료수 판매대 같은 관광객의 편의를 위한 시설은 아예 없다. 식물을 보호하기 위해 트레일을 이탈하지 말아달라는 당부만 눈에 띌 뿐이다.

다이아몬드 헤드 입구로 들어서는 초입은 원형 분화구 가장자리를 뚫어 만든 터널이다. 1940년대에 만들어졌단다. 2차선이지만 좁고 협소해서 별로 크지도 않은 우편차량 페덱스(FeDex)가 통과할 땐 그나마도 교행이 안 되니 터널 한편에 차량이 길게 늘어선다. 불편이 이만저만 아니겠지만 모두가 당연히 이를 감수한다. 미국인, 그들이 어디 경제력이 없겠는가, 기술력이 부족하겠는가, 땅이 비좁기나 하던가. 자연을 해치지 않고자 인간들이 스스로 불편을 감수하고 있을 따름이다.

이러한 자연에 대한 배려는 관광지 어디서나 느껴졌다. 인공시설물은 철저히 배재되어 있다. 예를 들어 그 유명한 와이키키나 하나우마 베이의 샤워시설은 초라했다. 달랑 수도 파이프 하나에 수도꼭지 몇 개 매달려있다. 어림잡아 30년 전에도 같은 시설을 사용했을 것이라는 것을 쉬 짐작할 수 있다. 한 달 사이에도 모습을 바꾸는 제주를 떠올려 보니 입맛이 썼다. 오름의 여왕이라는 다랑쉬 오름 들머리에는 모양도 제각각인 각종 안내판이 좌우로 열 댓 개 정도 늘어서 있다. 엄숙히 좌정한 여왕님 앞에서 웬 피켓시위대인가, 볼 때마다 민망하다.

우리 인간에게 자연은 곧 신이었다. 누구나 대자연 앞에서 경외감을 느끼고 절로 숙연해진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런 자연을 우리는 마음대로 짓밟고 다스리고 뜯어고치려 덤빈다. 우리가 조금 더 편해보겠다고 자연 위에 군림하려 한다.

자주 출몰하던 무지개, 낯익은 현무암 돌담, 하얀 웃음을 문 문주란, 입술연지색 유도화, 해변의 보랏빛 순비기 꽃무더기. 하와이는 여러모로 우리 제주를 닮은 섬이었다. 우리 아름다운 제주가 더 이상 본모습을 잃지 않도록 우리도 이제는 제주의 자연을 지켜주기 위해서 불편을 좀 참아내야 할 것 같다. 문득 성철 스님의 삼천 배의 속내를 알 것 같다. 바로 우리가 자연을 만나기 전에 가져야 하는 마음가짐이다. 사람 위에 자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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